도청 테이프 274개 내용 수사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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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는 정치권에서 특별법이나 특검법의 형태로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는 한 착수되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이날 '안기부.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불법 도청 테이프 보도와 참여연대의 고발 직후 143일간 진행해온 수사를 매듭지었다.

황교안 2차장 검사는 "범죄행위의 결과물인 도청 자료를 이용해 범죄행위의 피해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고 (수사 후) 그 대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이중의 기본권 침해"라면서 "이는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황 차장은 그러나 내란.살인 등 중대한 범죄로서 공소시효가 남아 수사의 필요성이 있으면 수사 착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김영삼(YS) 정부 시절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는 측근인 김기섭 당시 안기부 운영차장과 오정소 국내담당 차장으로부터 미림팀의 도청 내용을 구두로 보고받았고, 이원종 정무수석도 도청 정보를 전달받았다.

미림팀이 (도청을 통해) 수집한 첩보가 안기부장의 대통령 주례보고서에 일부 포함된 사실도 확인됐다. 김현철씨와 이 전 수석은 도청 자료를 근거로 1996년 12월 이회창 총재 지지 모임의 참석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등 도청 정보를 활용한 정황도 포착됐다.

김대중(DJ) 정부 때도 휴대전화 불법 감청으로 입수한 정보를 '대통령 보고서'에 포함시켰을 가능성이 있으나 보고서가 모든 정보를 종합해 작성.가공된 것이어서 김 전 대통령은 불법 감청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2002년 4월 국정원이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폐기한 이후 휴대전화 불법 감청은 물론 합법 감청도 없었다고 밝혔다.

또 삼성그룹의 정치권에 대한 대선자금 제공 의혹 및 검사들에 대한 '떡값' 제공 의혹과 관련, "공소시효가 지났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홍석현 전 주미대사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해 서면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게재한 월간조선의 김연광 편집장에 대해 "불법 도청의 결과물인 사실을 알고서도 그 내용을 보도한 행위는 실정법 위반"이라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검찰에 압수된 미림팀의 274개 도청테이프에 등장하는 인물은 정치인 273명과 고위 공무원 84명, 언론계 75명, 재계 57명 등 모두 646명이었다. 도청 대상은 대선 동향과 정당 활동 등 정치권 움직임이 대부분이었다. 도청 내용은 97년 15대 대선과 관련한 여야 대선 후보군과 주요 인사들의 동향(106건), 정당 활동 및 정치인의 정치적 소신 관련(206건), 사생활(41건) 등이었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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