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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기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꿀벌이 제집 찾아가는 격이라 할까, 매번 나의 모국방문은 신문사편집국 몇군데를 둘러보는데서 시작된다.
그런 가운데 내가 늘 느끼는 인상은 기자들의 활동양태와 편집국의 일반적 분위기에 있어서 미국과 한국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좋고 나쁘다는 선호의 기준에서가 아니고 저널리즘이라는 민주주의사회의 불가결한 한 직업분야에 있어서 어느쪽이 보다더 효율적이고 순리적이냐는기준에서 나는 늘 그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 미국 신문편집국들을 보자. 마감시간이 박두하면서 쑤셔놓은 벌집모양 바쁜것은똑같지만 한국은 긴장감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같이 짙은안개처럼 깔려있는 반면에 미국에는 여유가 많다.
자기일 끝낸 논설위원이 화려한 옷을 입은 여직원들과 낄낄거리며 농하고 있는 옆으로 휴가받은 기자가 자기딸 학교친구 한떼를 몰고와서 관광안내를 시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초컬릿을 먹으면서 휴지를 돌돌말아 농구흉내를 내어 먼곳 쓰레기통에 던져보는 부국장 한쪽 귀퉁이에서는 임신8개월의 뚱보가 되어 장기휴가를 떠나는 여기자의 송별파티로 한떼거리가 케이크를 자르며 폭소속에 박수를 치고들 있다.유머가 생활에 밴 미국 편집국이나 근엄하고 위엄이 있는 한국의편집국이나 둘다 다른 특이성 (kdiosyncrasy) 속의문화권이겠다. 그러나 계속 너무 팽팽한 분위기면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을까, 혹은 재주있는 사람을 단명시키는것은 아닌지 .
물론 바쁘고 긴장해야 능률이 난다는 논리(Creative Tension)를 가끔 들고나오는것이 신문업이기는 하지만 너무 일시에 만인이 계속 일관해서 긴박감속에 있다는 것은 총생산의 성과가 장기적으로 좋을수는 없지않을까한다. 양산과 양산의 역함수관계는 지적노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주 적용되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디어를 짜내어야하는 책임자일수록 시간에매어 혹사만 되어서는 양질의 글이 안나온다는것이 미국신문사의 생각인듯하다.
그래서 미국 편집국이 사교장처럼 느슨한듯 하면서도 기사의 생산은 극히 높은 반면 한국의 신문사 분위기는 마치 전쟁터 같으면서도 신문간의 기사는 큰차이가 없는듯하다.
주미 특파원들의 일정을 보아도 마찬가지다.현재 워싱턴에는 카메라맨을 빼고 한국특파원이 10명, 그만큼 워싱턴이 뉴스원으로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지난15년간 이분들을 보면 일의 분량이 너무 많은지 시간에쫓겨 허덕이다가 더 큰것을 잃지 않나하는 생각이든다.
타사와 치열한 경쟁이라는 선에서보면 이해도 되지만 자질구레한 쪼가리소식수집은 두어번 좀 뒤지면 어떤가.좀더 시간의 여유를 둠으로써미국의 시골·지방·변두리복합문화파악도 하게되고 장편의 르포작품도 더많이 나오는것 아닐까. 국무성과 국회와 대사관을 늘 바쁘게 동분서주하다가 3년임기를 끝내고 떠나는 분들을 보면 이런 실무에 시간을 너무 뺏김으로써 길게봐서 손실이라는 경영원칙을 혹시 본사가잊고 있는것 아닌가 생각된다.
직원을 혹사하기로는 워싱턴포스트지도 잘알려진 회사이지만 인적자원을 활용하기위해서는 쉬게하면서 부려먹는다. 한두달 계속 일해서 피로가 보이면 직속상관은 좀쉬라고 권한다휴가를 자주가서 몸과 마음을 휴식시키고 태엽을 풀어놓아야 끊어지지않고 다시 감기게될것이아니냐고 한다. 실용주의 미국사회가 철저하게 연구해낸 고도의 인력활용작전이다.
한국처럼 인사몇기 선후배의 개념이 없으므로 초대 남자노장기자들이 20대여기자들과 어울려 능력본위로 일하고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능위주다.대기자이면 대개 책들은 몇권썩 쓴 편이다.책이 베스트셀러이면 그만큼 신문사의 명예도 상승되는것 아닌가. 쓸만한 사람이 저술계획을 밝히면 중역진들은 적극후원,격려한다. 타사로 놓칠까 아까운 인재들은 외부활동이나 학계활동도 허락한다. 미국은 또 3백65일 신문이 발행되므로 국장단은 5∼6인으로서 국장,부국장,부부국장,부부부 부부부부 식으로 당번제로 함으로써 한두사람이 통틀어 맡았다가 몇달후에 기진맥진하는것은 피하도록한다.
부장이상은 퍼그워시(Pugwash)모임이라 하여 사주가 연2∼3회씩 먼 섬나라든지 외딴 산속으로 몰고가서 허심탄회하게 모든사람이 아이디어를 제시, 그중에서 최선책을 찾아내는 모임(brain-storming)을 갖는다. 매일중복되는 일과체크목록 정규스케줄에서 해방되어야 새로운 방향의 아이디어도 산출된다는 생각에서다.
한국의 기자들은 개개인 명문대도 나왔고 우수한 엘리트인재들이다. 개인 능력으로 볼때 절대로 뒤지지않는 한국의 기자들인데 모여서 종합된 작품으로 나온 결과를 보면 뭔가 중도에 불필요하게 소모된 능력이 있지않는가하는 느낌을 갖게된다.
이것은 외국에서 한국 언론인들을 오래 보아온 한 동업인의 입장에서 안타깝기 짝이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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