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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전 상무 체포 … 모르쇠 진술에 강경 모드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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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성 전 회장 측근들을 잇따라 소환·체포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방위 압수수색을 통한 성 전 회장의 로비 장부 추적과 측근들의 증거 인멸 혐의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등 ‘강경 모드’로 전환하는 상황이다.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은 22일 오후 성 전 회장의 국회의원 보좌관과 회장 비서실장을 지낸 이용기(43) 경남기업 홍보팀장을 소환했다. 이 팀장은 성 전 회장의 활동 전반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인물로 이날 새벽 증거 인멸 혐의로 체포된 박준호(49) 전 경남기업 상무와 함께 이번 사건의 핵심 관련자다.

 검찰은 이 팀장을 상대로 성 전 회장의 비자금이 이완구 총리 등 ‘성완종 메모’에 등장하는 정·관계 인사 8명에게 흘러갔는지 캐고 있다. 검찰은 이 팀장이 성 전 회장과 친분 있는 정치권 인맥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로비 장부’의 존재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이 팀장은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날인 8일 저녁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성 전 회장, 박 전 상무와 함께 마지막 대책회의를 했다.

 앞서 검찰은 21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박 전 상무를 증거 인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박 전 상무는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전환됐다. 그는 지난 4월 15일 검찰의 2차 압수수색 직전 성 전 회장 관련 자료를 외부로 빼돌리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경남기업 건물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2대에 저장된 영상이 삭제되거나 녹화 자체가 안 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CCTV가 꺼진 상태에서 성 전 회장의 로비 장부 등 핵심 증거가 외부로 빼돌려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경남기업 본사 주차장 출입구에 설치된 CCTV. 22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긴급 체포된 박준호 전 상무는 검찰의 지난 15일 2차 압수수색 직전 여기에 담긴 영상기록을 삭제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박 전 상무가 이 과정을 주도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박 전 상무 체포에 앞서 경남기업 직원 3~4명이 증거 인멸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해 지난 20~21일 이들을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박 전 상무의 지시로 경남기업 측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상무에 대해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또 이 팀장이 박 전 상무 등과 공모해 직원들에게 증거 인멸을 지시했는지 집중 조사했다.

 수사팀이 박 전 상무 등 성 전 회장의 최측근을 잇따라 소환하고 체포하는 것은 이들을 압박해 진술을 확보하고, 서로 말을 맞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박 전 상무 등이 “금품 로비나 관련 장부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검찰은 이들이 의혹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금품 공여자’가 사망한 상황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면 오랜 기간 그를 보좌한 측근들의 ‘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전 상무 등을 상대로 성 전 회장이 2013년 4월 4일 이완구 총리에게 건넸다고 주장한 3000만원이 마련된 과정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또 박 전 상무가 성 전 회장과 함께 윤승모(52)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입원한 병실을 찾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확인하고 있다. 윤 전 부사장은 2011년 6월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성 전 회장의 돈 1억원을 당 대표 경선 자금 명목으로 전달한 것으로 지목됐다. 검찰은 측근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윤 전 부사장을 소환해 홍 지사에게 돈을 건넨 정확한 시기와 성 전 회장이 방문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 등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휴대전화 2대로 경향신문 기자와 마지막 통화를 한 뒤 운전기사 여모씨에게 “데리러 올 필요가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김백기·윤정민 기자 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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