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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단 한 명, 조폭 잡는 여자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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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지난 16일 삼성동 강남경찰서의 강력2팀을 찾았다. 이곳은 살인·절도·폭력 같은 강력 범죄를 다루는 곳이다. 특히 ‘조폭(조직폭력배) ’ 사건은 강력2팀이 전담한다. 거친 냄새 물씬 풍기는 곳에서 30대 초반 여성이 기자를 반겼다. 바로 강남·서초·송파경찰서를 통틀어 강남 지역 유일한 여형사 김은지(33) 경사다.

 김 경사는 한때 신춘문예를 꿈꾸는 문학도였다. 운명이 바뀐 건 대학생 때 찾은 미용실에서다. 머리 하는 친구를 기다리며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읽었다. 전직 FBI 범죄심리분석가 로버트 K.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였다.

 이때부터였다. 문학도는 경찰을 꿈꿨다. 고향인 경남 남해군에서 파출소 근무를 시작했는데 ‘이상한’ 순경이었다. 쉬는 날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변사체 사건이며 화재 현장을 찾았다. 파출소를 찾는 형사들에게 “형사 시켜 달라”고 매번 말했다. 결국 경찰서 수사과에 배치됐는데 근무 5년 만에 서울 발령을 자청했다. 이유는 “범죄 많은 곳에서 현장(수사)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서울 올라와서 여자 형사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3월에 벌어진 ‘압구정동 제과점 인질극’에서다. 50대 남자가 빵 자르는 칼로 손님이었던 40대 여성을 위협해 인질로 잡아둔 상태였다. 남자 형사와는 대화조차 거부했다. 자신을 죽여달라는 얘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난감한 상황에서 그가 투입됐다. “망상장애였어요. 저 같은 자녀 있지 않냐는 말로 공감대를 형성하니 유학 보낸 자녀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해 3시간을 설득했어요. 먼저 인질을 구출하고 그 남자도 경찰서로 데려올 수 있었죠.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는 위협감을 덜 주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했던 거죠.”

 사실 여자 형사는 흔치 않다. “긴박한 상황에서 ‘여자’라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압박감이 제일 힘들어요. 여자들이 형사를 지원했다가 오래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2년 동안 강남서 강력팀에서 보내면서 압박감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동료들과는 끈끈한 정이 생겼다.

 이런 그가 보는 강남은 어떤 곳일까.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다’는 말이 있잖아요. 고급주택이 많다 보니 절도 사건이 많아요. 또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자살, 자살 기도 사건도 자주 있고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저희가 항상 보는 피의자·피해자 모두 상처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을 대하다 보면 형사들도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래도 술 한잔으로 털어내고 사건 터지면 또 달려가는 게 형사거든요. 그런 선배들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도 이곳에서 오래 버티고 싶어요. 그게 계획이에요.”

  만난 사람=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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