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001)|제80회 한일회담(200)|일수석 대표에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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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당초 9윌20께로 예정했던 한일회담재개는 김유택경제기획원장의 방일결과가 신통치 않아 잠시 뒤로 밀릴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군사정부가 한일회담의 전도에대해 크게 낙망해 버린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혁명정부는 회담재개에 대비해 수석대표 인선에 착수하는등 준비작업을 서둘렀다.
대승적 견지에서 작은것은 서로 양보를 해서라도 회담을 타결로 이끌어야 한다는게 당시 최고회의의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회담을 꼭 성공으로 이끌어야되겠다는 의지롤 갖고 양국문제를 거시적안목에서 다를수 있기 위해서는 양쪽이 모두 수석대표를 거물로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혁명정부는 즉시 주일대표부에훈령을 내려 우리측의 이같은 태세를 일본측에 알리고 그쪽에서도 거물을 임명할수 있게 막후교섭을 벌이도록 지시했다.
우리정부가 생각하고있는 일본측의 거물은 「기시」(안신개) 전일본 수상이나 또는 「이시이」(우정) 일한문제간친회장이었다.
주일대표부는 이훈령을 좇아 그 두사람중 한사람이 수석대표에 임명되도록 막후교섭에 나섰다.
이쪽의 거물수석대표로는 몇몇예비역 장성과 일본인 사회에서지명도가 높은 이상백씨등이 한때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한일회담에 관한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보류되었다.
대신 군사정부는 과정수반을 지낸 허정씨를 적임자로 판단,박동진 당시 외무차관으로 하여금 허씨를 방문토록해 승낙을 받아냈다.
군사정부는 허정씨의 수석대표 내정을이례적으로 먼저 리크시켜 일본측 수석대표가 우리와 격이맞게 결정될때 허정씨가 정식으로 수석대표직을 수락할것이라고 토를 달기도했다.
우리의 이같은 포석에도 불구하고 일본쪽 형세는 우리의도와는 아랑곳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외무부가 허정씨의 수석대표 내정사실을 밝힐 즈음 도오꾜에서는「스기·미찌스께」(삼도조)라는 비교적 생소한 인물의 수석대표내정을 보도하고 있었다.
「스기」 씨는 정치인도, 행정관료출신도 아닌 오오사까상공회의소회장을 거쳐 당시 무역진홍협회장을 맡고있던 순수 재계인물이 었다.
「스기」 씨의 수석대표 내정 사실은 혁명정부에 실망과 가버운 분노를 함께 일으켰다. 우리쪽이 「기시」 씨나 「이시이」 씨를 수석대표로 공공연하게 기대해 왔던것에비추어서는 꼼짝없이 한대 얻어맞은 꼴이었다.
군사정부는 즉각 허정씨의 수석대표내정을 없었던 일로 돌리고 이미 며칠전에 이동환주일공사와 「이제끼」 아주국장사이에 합의했던 10월10일의 회담재개일자도 무기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불쾌감표시에도 불구하고 일본측은 한번내정한 수석대표를 바꿀수가 없었다.
아니 바꿀 이치가 없었다.
「스기」씨는 비록 재계인이었지만 「이께다」 수상과 밀접한 관계였던 사이였고 「이께다」 수상이한일회담 수석대표라는 자신의 정치생명과 관련된자리에 라이벌인「기시」 나 「이시이」 를 앉힐리만무했다.이 단순한 이치를 군사정부는 깜박 외면하고 있었던것이다.
군사정부는 결국 허정씨 대신배의환 전한은총재를 수석대표로 임명하고 회담도 10월20일 재개토록 최종 곁정했다.
일본측의 처사에 반발,회담을 무기연기하겠다고 발표한지 꼭1주일만의 번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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