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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방 농간현장〉"개포 막차다"복덕방들 더 극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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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첨자발표현장>『자, 매물 나왔습니다, 매물. 48평, 59평 매물 나왔어요-.』
현대가락아파트 3차 당첨자를 발표한 24일 하오5시20분 가락동 현대아파트 모델하우스 앞 -.발표를 보러온 3백여명의 사람들 틈을 비집고 10여명의 복덕방 업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원매자를 찾아 다녔다. 발표가 있은지 불과 20분만이다.
S씨가 값을 물어보자 『7백4호로 로열층으로 아직 값은 정할 수 없으나 채권값에 몇 백 만원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며 전화번호나 명함을 요구했다.
그 옆에서는 사진기를 든 복덕방업자들이 이쪽저쪽의 당첨자명단을 열심히 찍고 다른 한쪽에서는 채권 값을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당첨자인 듯한 사람을 붙잡고 『사실 겁니까, 팔 겁니까. 잘 쳐 드릴 테니 여기로 연락 주십시오』라고 매달리며 명함을 건넨다. 길바닥에는 복덕방업자들이 뿌린 명함이 즐비하게 깔렸다. 당첨자 3백여명 가운데 줄잡아 복덕방이 1백명은 됨직했다. 복덕방 종사자들 가운데는 젊고 예쁜 여자들까지 끼어있었다.

<채권접수현장>
이에 앞서 우성개포와 현대가락아파트의 분양접수를 받은 주택은행본점과 반포·여의도·대치·둔촌동지점에도 30∼50명의 복덕방업자들이 출동, 난장판을 벌였다.
한 부인이 소개업자를 붙잡고 『34평은 얼마를 써넣어야 하느냐』고 묻자 『2군은 3천만원, 1군은 2천5백만원이상 써넣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밝혀진 34평형의 최저응찰액은 2군이 2천8백56만원, 1군이 2천3백20만원이었다.
어떤 복덕방은 아예 다섯개의 주택청약증서와 위임장·인감증명서 등을 봉투에 넣고 와 신청서에 채권액을 적어냈다. 고객의 접수를 대신해주는 것이었다.
이들은 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평형×군은 얼마를 써넣어야 안심』이라고 말하면서 복덕방 명함을 내밀고 『당첨되면 꼭 연락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또 다른 복덕방은 3명의 부인과 함께 들어와 동료복덕방과 상의한 뒤 채권액수를 지정, 써넣도록 했다.

<전매유혹>
24일 가락 현대아파트당첨자 발표현장에 갔다가 떨어져 우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김모씨(45)는 하오9시쯤 복덕방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현장에서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던 복덕방이었다. 『59평형 12층2호는 분양가말고 2천9백만원, 2층4호는 2천만원, 7∼8층 로열은 3천5백만∼3천6백만원선이니 어느 것이든 골라 잡으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갔던 S씨도 복덕방에서 준 명함의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 『7백4호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보자 『아침에 3천6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이미 팔렸다』고 했다. 59평형의 채권 최고가격에 7백만원이 붙은 값이고 다른 아파트의 경우도 하룻밤사이에 5백만∼7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S씨가 『거래는 어떤 절차를 밟게 되느냐』고 물어보자 복덕방은 『당첨자가 아파트회사와 계약하기 전에 사는 것이 유리하며 1회 중도금만 내면 언제든지 명의변경을 해준다』고 했다. 복덕방은 또 『우리들이 길거리에서 우왕좌왕해 보이긴 하나 손님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도록 세금관계나 명의이전 등도 깨끗이 해준다』고 안심까지 시켰다.

<고질적인 투기근성>
부동산소개업소는 부동산물건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서로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직업이다. 실제로 전국 대부분의 소개업소는 이같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영업을 하고있다. 그러나 투기지역의 일부 소개업자들은 아직도 고질적인 투기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아파트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과거 0순위제도를 만들자 소개업자들은 0순위통장 딱지장사로 투기를 과열시켰다. 정부가 다시 채권입찰제를 만들자 소개업자들은 또다시 이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어 채권 값을 올리고 전매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포·가락현상」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복덕방 정비계획과 개포 막차를 의식한 무허가 복덕방들의 「의도적인 난동」이라고 보고 있다. 기존아파트의 침체를 신규분양아파트의 붐으로 타개해보자는 의도와 함께 중개업법 실시에 따라 무허 복덕방이 정리되니 한탕 해야 된다는 생각, 그리고 개포 아파트는 이번과 다음의 선경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관계전문가 및 부동산관계자들은 일부소개업자들의 고질적인 투기심리와 이같은 사정이 겹쳐 채권 값을 최고로 높였으며 일부 소개업소비행을 그대로 둘 경우 금전적으로나 사회심리상 엄청난 피해를 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 의견>
주택건설업체의 모임인 한국주택사업자협회 이규완 진흥부장은 『투기전문 복덕방의 농간이야말로 나라의 주택정책을 뒤흔드는 원인』이라고 말하고 『최근 주택 값을 치솟게 하는 첨병역할을 했으며, 이 때문에 주택거래가 침체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은 또 복덕방이 할 일은 『가만히 앉아 물건을 팔고 살 사람을 소개해주는 것』 인데 이들이 투기현장에 뛰어들어 부동산값을 부추기는 것은 명백한 위법인데도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 「할 일만 하도록」행정력으로 철저한 단속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든지 채권입찰현장에 가보면 투기복덕방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이 현장에서 판치는 것을 놓아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평론가 이태교씨는 『정부가 주택문제를 「대증요법」으로만 치료하려하지 말고 광범한 안목으로 순조롭게 풀리도록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개업소문제만 하더라도 단속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기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채권입찰제의 경우 시민들이 응찰가격 등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복덕방을 찾지 않을 수 없으며 복덕방이 이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정부나 주택업자들이 부동산 유통안내소 같은 곳을 만든다면 효과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복덕방을 단속만 했지 그들에 대한 교육은 없었다고 지적, 체계적인 교양·교육으로 건전한 거래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생각해 볼일이라고 했다.
「대한중개업협회」 결성을 추진하고 있는 이창일씨(대한부동산대표)는『정부가 부동산업자의 사회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개선점을 찾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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