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7)-제 80화 한일회담 (196)|박의장 대책회의 주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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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정부는 61년 8월 하순 자민당 간부및 외무성 실무관계자간의 한일문제 간담회를 열어 한일회담 재개방침을 공식 천명했다.
「이세끼」(이관) 일본외무성 아시아국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이 한일회담 재개를 제안할 경우 일본은 이에 응할 것』 이라는 말로 수동적이나마 일본정부의 회담 재개 의지를 분명히 했다.
불과 1주일전 한국 방문에서 돌아온 「마에다」(전전) 북동아 과장은 「방한보고」를 통해 『한국의 정세는 협상할수 있을만큼 충분히 안정되었다. 한국정부는 회담재개를 열망하고 있다. 한국은 또 경제안정을 위해 미일등 포함한 외국자본 도입을 긴급히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일본의 대한 원조는 이같은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이 요청한 주한 일본 대표부 설치는 한국민의 대일 감정으로 보아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일본외무성의 회담재개에 관한 긍정적 입장이 표명된 며칠후 이동환공사와 「이세끼」아주국장은 공식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제6차 한일회당을 9윌2O일께 열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
회담재개 일자가 대충 잡혀감에따라 혁명정부는 구체적인 교섭대책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박동진 외무차관 주재로 실무대책회의가 자주 열리고 가끔은 바쁜 중에드 박의장이 직접 대책회의를 주재, 대응전략을 검토하기도 했다. 당시는 김홍두 외무장관이 그만 두고 송요찬 내각수반이 외무장관직을 잠시 겸임할 때였다.
회의에서의 최대관심사는 역시 청구권 문제였다. 도대체 우리 정부의 요구액이 얼마이며, 일본정부는 어느정도의 규모를 생각하고 있느냐가 포인트였다.
이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우선 당시의 분위기만을 이동환씨(당시 주일공사) 로 부터 잠깐 알아보자.
『부임하기 며칠전 최고회의에서 박의장이 직접 주재하는 한일교섭 대책회의가 열렸어요. 말하자면 부임에 앞서 내게 대일전략을 수임하는 성격의 자리였죠. 아마 내 기억으로는 한일회담의 역대 수석대표가 다 나왔고 김종필중정부장도 참석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청구권 문제에 미치자 최고위원 누군가가 불쑥 「일본은 도대체 얼마를 생각하고 있느냐」 고 물었어요. 당시만 해도 청구권 규모에 관해 일본측이 딱 부러지게 얼마라고 게시한 것이 없었고, 그저 애드벌룬처럼 몇가지 숫자가 오락가락할 때죠. 한일회담에 오래 관계했던 대표 한분이 이 질문을 받아「그동안의 일본측 얘기를 종합하면 1억달러 정도를 생각하는 것 같더라. 우리가 2억달러 정도를 받아낼수 있다변 최대로 얻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이 정도 선이라면 타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더군요. 회담에 오래 관계했던 분의 얘기여서 그것이 비록 우리가 통념으로 생각하고 있던 규모와는 큰차이가 있었지만 좌중은 그저 듣고만 있었어요. 나중 일본에 부임해서 이 문제를 직접 타진해 보았읍니다만 역시 비슷한 얘기였지요. 일본외무성의 한 친구는 대장성을 가리켜 「그 친구들 형편없는 사람들이다. 청구권 규모를 7천5백만달러 밖에 생각지 않고 있다」 고 짐짓 비난을 퍼부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러면 외무성은 얼마를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1억2천만달러는 되어야 할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들이 서로 짜고 엄살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일본측의 카드가 1억달러선에서부터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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