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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문제 챙기면 기업 경쟁력도 높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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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앙일보는 8일 본사 회의실에서 '가족친화 경영'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양승주 여성가족부 국장, 강혜련 교수, 최두환 사장, 차영구 원장, 장혜경 박사,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왼쪽부터)이 토론회에 앞서 담소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저출산, 고령화, 가족 위기 시대를 맞아 국내 기업에서도 가족친화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선진국 기업에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족친화 경영이 한국의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놓고 좌담회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맞벌이와 핵가족 증가 등으로 근로자의 삶이 크게 변화한 만큼 기업이 근로자의 가족 문제를 챙겨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김정수)=한국에서 가족친화 경영이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양승주=근로자의 삶이 너무 변했다.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고 어머니는 가사에 전념하던 역할 분담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맞벌이가 늘고 핵가족화도 빠르다. 옛날에는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봐주는 등 가족이 가족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지금 직장인에게는 가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다.

▶강혜련=근로자 삶의 질이 열악해지면 일에 집중력이 발휘되지 않고, 기업의 생산성도 떨어진다. 외국기업 사례들을 보면 근로자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회사가 해결했을 때 근로자의 성과도 높다. 미국 기업들은 1960년대부터 사내 탁아소를 설치하며 가족친화 경영을 시작했다.

▶장혜경=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1.16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저출산의 큰 이유는 여성들에게 직장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는 것이다. 일은 해야 하는데 아이를 낳으면 누가 봐 주나. 가족친화 경영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늘리는 데 기여한다.

▶차영구=기업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직원 개인들이 정신적으로 안정돼 있어야 한다. 가족친화 제도는 업무 외의 일은 회사가 맡아줄 테니 직원들은 일에만 전념하라는 것이다. 종업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등 기업의 이익 차원에서 가족친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기업 입장에서는 가족친화 경영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최두환=가족친화 경영이 "나누자"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기업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생존이다. 회사가 살아남아야 직원들에게 혜택도 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과 효과를 명확하게 따져보며 시행할 것이다.

▶장혜경=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족을 배려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령, 탄력근무제는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바꾸고 휴직이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본 복지후생성은 300인 이상 근무하는 기업에 2005년부터 탄력근무제를 의무화했다.

▶강혜련=외국 기업들은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만큼 직원들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P&G.리바이스 등 미국 대기업들이 그런 예다. 이들 기업은 수십 년 동안 직원에게 돈을 쓰고 또 그 효과를 검증했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이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차영구=가족친화 경영은 꼭 제도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생활을 배려하는 문화를 일컫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원들이 집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이를 회사에서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사회=토론자들이 근무하는 팬택이나 네오웨이브는 가족친화 프로그램이 많다. 이런 프로그램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나.

▶차영구=우리 회사 직원 5000명의 평균 나이는 30세다. 연령대가 비슷해서 직원들의 관심사도 대부분 결혼과 출산 등에 집중돼 있다. 우리 회사는 사내 커플을 적극 장려하고 출산 휴가도 법정 기준보다 보름 더 많은 105일을 주고, 육아휴직 중에도 급여를 주고 있다. 이런 제도들은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준다고 보고 있다.

▶최두환=회사가 직원에게 잘해주면 직원도 그만큼 회사에 잘할 것으로 믿는다. 요즘 젊은이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달라진 만큼 회사도 호응해 줘야 한다. 직원 자녀들을 위해 방학 때 자연학습이나 문화답사 행사를 열고 있다. 가족 단위로 뮤지컬을 볼 수 있도록 후원도 한다. 직원들이 회사를 좋아하게 되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더라. 결국 이런 프로그램들이 회사에도 이익이 된다.

▶차영구=팬택의 변호사는 직원의 법률 문제도 상담해 준다. 회사에서는 고문 변호사의 업무성과를 따질 때 직원 상담 실적을 포함한다. 직원이 집안일을 걱정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회=가족친화 제도는 기업마다 잘 맞는 게 다를 것이다. 어떤 회사 직원들은 성과급 등 금전적 보상을 원할 수도 있다.

▶강혜련=직원의 직급과 일의 종류에 따라서 필요한 제도도 다르다.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제조.생산 직종 근로자는 물질적 보상이 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반면 밤새워 일하는 컨설팅.연구.정보기술(IT) 등 지식 기반의 업종에선 탄력 근무제가 좋을 것이다.

▶최두환=벤처기업 같은 지식 기초 기업이나 직종이 가족친화 경영에 더 잘 맞는다. 가족친화 제도는 직원을 행복하게 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데 이런 행복감이나 자부심이 창의성과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양승주=국내에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가족친화 경영을 잘한다. 벤처.중소기업들은 우수 인력 확보에 대기업보다 불리하기 때문에 가족친화 제도 도입에 더 적극적인 것 같다. 반면 덩치 큰 기업들은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경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두환=벤처기업에선 유능한 직원들을 회사에 계속 남아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가족친화 제도가 없으면 유능한 직원을 붙잡아 두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사회=정부와 기업이 이 제도 도입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장혜경=일본 정부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고민 끝에 가족친화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인증마크를 주는 방안을 내놓았다. 회사가 만드는 제품에 이 마크를 붙일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회사 이미지를 높일 수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양승주=정부가 기업들에 좋은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는 게 필요하다. 가족친화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정부 조달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장시간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근무 중 생산성을 높이고 잦은 회식문화를 바꿔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혜련=기업가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기술에서 세계 1위도 좋지만,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정도의 가족친화 프로그램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부도 직원수가 일정 이상인 기업에 관련 제도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

▶양승주=물론 제도가 중요하다. 동시에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중간관리자가 제도를 이용하라고 확실하게 말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정리=홍주연 기자 <jdream@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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