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티모르 돕는 한·일 자원봉사자들의 '다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사람들이 지보고 사투리 쓴다 카데예."

1일 영종도를 출발해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탄 뒤 도착한 신생국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서 만난 일본인 이시바시 히데키(石橋英樹.35)가 유창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YMCA 연맹이 3년 전 독립한 동티모르의 재건 활동과 현지 YMCA 설립을 위해 파견한 시민운동가다. 그가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히로시마 출생인 그는 대학을 마친 뒤 일본 YMCA에서 일하다 1998년 포항으로 건너왔다. 한.일간 국제교류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당초 1년 예정으로 왔으나 본인 희망에 따라 올 초까지 7년간 머물렀다.

"1년쯤 지나니까 한국말이 쉬워졌고 친구들도 많이 생겨 떠나기 싫더라고요."

이렇게 5년가량 경북 지역에서 살다보니 경상도 사투리가 입에 붙었다. 그는 "요즘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샘'이라고 하던데 저는 옛날부터 '이시바시 샘(선생님의 경북 사투리 발음)'이었다"고 농담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하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에서 활동했다. 1년쯤 지났을 때 YMCA 아시아태평양 연맹에서 동티모르 개척자를 찾았다. 그때 한국 YMCA와 일본 YMCA가 공동으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렇게 해서 올 초 딜리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말레이 제도 동쪽 끝에 있는 낯선 땅. 국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 100만의 나라에서 그는 초등학교 영어 강사 노릇까지 하느라 늘 바쁘다. 한국이나 일본 YMCA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현지 안내도 그의 몫이다. 능숙한 한국어와 일본어, 조금 더듬거리는 영어, 현지어인 테툼어까지 섞어가며 통역을 해낸다.

그는 "다른 건 다 견딜 만한데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립다"면서 "특히 회를 먹은 다음에 나오는 매운탕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부모님이 계신 일본에도 가고는 싶지만 친한 친구들이 많은 한국에 더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 YMCA 사람들이 붙여준 '한국인과 일본인의 DNA가 섞인 사람'이라는 별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독도 조례'로 한.일간 마찰을 빚었던 시마네(島根)현 얘기가 나왔다.

"제가 국립 시마네 대학 법학과 출신이거든요. 아버지 고향이 시마네현이라 대학을 그리로 간 거죠.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두 나라 사이가 괜찮았는데 이곳으로 오니까 그 일(독도 마찰)이 터졌어요. 제가 한반도에 있어야 한.일 외교가 원활할텐데…"

그는 한국 사람의 특징에 대해"행동이 빠르지만 포기도 빠르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같은 점이 일본인들과 참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한국인과 일본인이 정말 비슷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고 했다.

그의 꿈은 북한에서 NGO 활동을 하는 것이란다.

딜리(동티모르)=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