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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홍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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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홍콩 간다"는 말이 있다. 마약이나 섹스가 배경에 깔린 비속어다. 점잖게 '환상적이다'로 풀이할 수 있다. 유래는 분명치 않다. 1960년대 중개무역항 홍콩이 주변국보다 잘살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란 주장이 가장 그럴 듯하다. '환락의 홍콩' '쇼핑의 홍콩' 등 이유야 어찌 됐든 홍콩 가는 게 좋다는 데서 기원했다는 이야기다.

'홍콩'의 지명 유래 또한 명확지 않다. 청(淸)대 주(珠)강을 무대로 활동한 여자 해적 샹구(香姑)가 관군에게 패한 뒤 도망쳐 와 붙은 이름이다, 달콤한(香) 샘이 있어 어부들이 홍콩으로 불렀다 등 다양하다. 가장 설득력 있는 건 향나무 중개 수출지로 유명해 얻게 된 이름이란 견해다. 이 홍콩의 중국 표준어 발음은 '샹강(香港)'이다. 국제 사회에 '홍콩'으로 알려진 것은 영국 덕이 크다.

"대영 상선이 먼 길을 왔기에 자주 파손돼 수리가 필요하다. 연안 한 곳을 줘 수선케 하고 필요한 물자를 보존토록 한다." 1842년 홍콩 할양을 규정한 난징(南京)조약 3항이다. 마치 선심 쓰듯 영토를 내줬다. 영국은 현지 광둥화(廣東話) 사투리에 따라 '샹강'을 'HONGKONG'으로 불렀고, 이것이 세계로 퍼졌다.

1982년 9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홍콩의 장래 논의차 베이징을 찾았다. 그해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은 기세가 등등했다. 그러나 '작은 거인' 덩샤오핑(鄧小平)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홍콩을 되찾지 못한다면, 중국 정부가 말기의 썩어빠진 청 정부와 다를 바 무엇인가." 덩의 일갈에 놀란 대처는 인민대회당 계단을 내려오다 실족, 넘어지며 홍콩의 중국반환 운명을 예고했다.

영국은 97년 홍콩을 떠났지만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다. 스탠리 마켓 등 지명에서 자동차 좌측통행 등 사회질서에 이르기까지. '홍콩 행정의 꽃'으로 불리는 청렴한 홍콩 공무원과 경찰을 남긴 건 자랑이기도 하다. 그 홍콩경찰에 최근 비상이 걸렸다. 13일 개막되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맞춰 홍콩을 찾는 세계 각국 시위대, 특히 한국 시위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큰 고민이란다.

홍콩에선 4일 25만 명이 참가한 민주화 시위가 있었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한국 시위대도 불상사 없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는데.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