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과학연구물,비전문가는 봐도 알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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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 수첩 파동이 'pd 수첩'을 규탄하는 여론 흐름으로 가면서 pd 수첩의 부도덕성은 비난 받아야 하지만 진실도 중요하니 이를 밝히기 위한 확실한 증거를 황 교수팀이 보여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도 일부에서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겨례 신문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모 교수의 '진정한 국익'이란 칼럼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황 교수는 이제 한국 국민을 대신해서 자기 성찰적 진정성을 확실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한국 과학의 쾌거에 공연한 ‘흠집내기’를 하려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면, 또는 그간에 한국의 압축적 성장이 편법적 관행에 의존해온 것이라는 불신이 있었기에 이번의 사건도 그러한 배경을 정당화할 소지가 있다면, 이러한 것들을 불식시키는 기회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과학적 진실은 과학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밝혀지기 마련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연적 흐름에 맡기기보다는 진실을 투명하게 밝히고자 하는 의지와 진정성을 아주 확실하게 전 세계에 보여 주는 것만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일이다.'

이 주장은 너무나 당연하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이란 학문의 특수성을 모르는 데서 오는 주장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교수가 말하는 '진실을 투명하게 밝혀 전 세계에 보여 주는 일' 은 이미 끝난 것이다. 과학 연구, 특히 첨단적인 연구물의 결과는 권위 있는 학회지에 발표 함으로써 밝혀 지는 것이다. 사이언스나 네이처가 왜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지 아는가? 여기에 실린 논문은 유사한 연구를 하는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기준으로 하거나 참고 자료로 삼는다. 그러니 그것이 거짓이라면 조만간 들어 날 수 밖에 없다.

과학 연구의 결과물은 전문가에게 보여 주고 그들로부터 검증 받는 것이지 무슨 공산품 보여주 듯 일반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비전문가는 보아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제3자에게 검증 받으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제 3자가 누구인가? 그 3자 역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일부 일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이언스나 네이처는 믿을 수 없고, 제 3자는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처럼 권위 있는 제3자가 누구인가?
이는 국익의 문제이거나 사대주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사이언스나 네이처의 검증을 뒤집는다면 세계가 놀랄 일이다. 이를 검증할 만한 제 3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나서기 바란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보다 훨씬 권위 있는 기관이 되지 않겠는가?

만일 황 교수팀이 제 3자에게 검증을 받았다고 치자. 사이언스나 네이처가 황 교수 팀을 어떻게 보겠는가? 자신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황 교수 팀의 후속 논문을 받아 주겠는가? 또 이처럼 권위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서 학계의 세계 무대로 진출하려는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을 받아 주겠는가? 자칫하면 한국의 과학계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 이 순간에도 묵묵히 연구에 열중하는 우리의 과학도들의 꿈을 송두리채 앗아 갈 것이다.

이번 파동의 빌미를 준 것은 황 교수 팀 자신에게 있다. 어쩌자고 pd 수첩 팀에게 줄기세포 샘플을 주었단 말인가? 이것이야 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이고 국익을 손상 시킨 일이다.

pd 수첩 팀이 진실을 밝히겠다며 샘플을 요구하고 연구 팀에서는 샘플을 주고 또 이 검증이 잘못 되었다고 해명하고 검증을 확실하게 하겠다며 연구원을 미국까지 찾아가서 협박하고 이것이 온 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소위 선진국의 과학계의 기준에서 보면 하나의 코메디다.

이제야 말로 우리의 후진성을 적나나하게 보여 주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할 때다. 그 첫 출발은 더 이상 황 교수팀에게 당장 무언가를 확실하게 보여 달라는 요구를 거두어 들이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디지털국회 윤길수]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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