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각도가 달라지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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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중요한 서류와 수표가 든 서류가방을 들고 도시의 뒷골목을 걷고 있다. 그때 앞쪽에서 머리를 박박 밀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당신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 온다. 틀림없는 폭력배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서류가방을 가슴 앞으로 가져가며 몸을 잔뜩 움츠린다. 사내는 마침내 몸을 날려 당신을 덮친다.

위의 장면을 반대 각도에서 리플레이(replay)해 본다. 머리를 박박 밀고 험상궂게 생긴 당신이 도시의 뒷골목을 걷고 있다. 저 앞에서 한눈에도 회사 직원인 듯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데 무엇인가 귀중품이 들어 있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경을 쓰고 있다. 당신은 무심코 그 사람 머리 위로 시선을 돌린다. 순간, 깜짝 놀란 당신은 전속력으로 그 사람을 덮친다.

이번에는 좀 높은 데서 이 장면을 내려다보자. 어느 건물에서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저 아래로 머리를 박박 밀고 험상궂게 생긴 젊은이가 걸어가고 있고 콧수염을 기르고 서류가방을 든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마주 오고 있다. 그때 공사장 받침대에 쌓아 놓았던 벽돌들이 균형을 잃고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심코 눈을 돌렸다가 이것을 본 젊은이가 전속력으로 달려가 서류가방을 든 사내를 몸으로 덮쳐 넘어뜨린다. 간발의 차이로 벽돌들이 바로 옆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체를 보았을 때 전모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막이 뜬다. '가디언: 전체를 보여 주는 신문'

영국 맨체스터 신문 가디언의 1987년 광고다. 관점에 따라 진실이 얼마나 크게 왜곡될 수 있는가를 이 광고는 아주 쉽고 극명하게 보여 준다. 당시 많은 사람이 이 광고의 복사본을 요청했는데, 그중에는 강간으로 기소된 한 청년도 있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자료로 이 광고를 원했다고 한다.

진실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밝혀지는 것이 아닌 듯하다. 어쩌면 진실이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나오는 전자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전체를 보려는 노력을 조금만 더 한다면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다. '선량한 시민을 폭행하는 스킨헤드 족' 같은 한정된 시야의 판단은 결국 마녀 사냥을 불러올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신화와 주술의 단계에 머무를 것이다.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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