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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노력해야 운도 따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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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잘라서 보내면 선물 준대."

"정말? 엄마, 우표 한 장만 사주세요."

김민주(27)씨의 '경품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초등학교 시절 동생과 함께 과자봉지 뒷면에 새겨진 응모권을 오려 보내 종합선물세트를 받았다. 커다란 상자에 온갖 과자가 들어찬 제과회사 종합선물세트는 당시 어린이들의 꿈이었다. 어린 민주씨는 터득했다. '공짜로 선물을 받는 길이 있구나.'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하다. 중.고교 시절에는 공부에 쫓겨 경품에 응모할 시간이 없던 민주씨. 그러나 경품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여유가 생기자 경품사냥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응모에서 건진 첫 소득은 전자수첩. 한 대기업이 기업 이미지와 관련해 소비자들의 의견을 묻는 행사에 응모한 결과였다. 딱히 바쁠 것도 없는 대학생에게 복잡하기만 한 전자수첩이 필요할 리 만무. 그래도 친구들의 입을 벌어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용기를 얻은 민주씨는 '사냥기술'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갔다. 가장 중요했던 것이 정보 수집. 무슨 경품행사가 있는 줄 알아야 응모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씨는 PC통신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흘려보내는 광고 페이지들을 넘겨가며 경품의 흔적을 찾았다. 경품 정보가 실리는 잡지와 스포츠 신문도 틈틈이 구해봤다. 그 다음 한 일은 경품과 관련해 자신의 소질을 갈고 닦는 일. 세상에는 여러 가지 경품행사가 있다. 그저 응모권을 보내면 되는 게 있고 퀴즈를 풀어야 하는 것도 있다. 때론 사진을 보내야 하고 사연을 받는 행사도 있다. 독자나 소비자로서 의견을 써보내야 하는 것도 있다. 이 중 민주씨는 마지막 두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타공인, 글 쓰는 데 재주가 있었기 때문. 정보를 뒤져 이런 행사가 있으면, 평소 메모까지 해가며 쓸 내용을 준비해놨다가 빠짐없이 응모했다.

경품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민주씨의 당첨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교재를 만드는 일을 하는 지금까지 그녀가 받은 경품들은 무지막지하다. 세탁용 세제에서부터 DVD 플레이어를 거쳐 홍콩 3박4일 여행까지 갖은 상품들이 망라돼 있다. 이 중에 최고는 역시 홍콩 여행. 지난해 홍콩 관광청에서 개최한 쇼핑왕 선발대회에 한국 대표로 뽑혀 대회 중 사들인 80만원 상당 상품들까지 고스란히 챙겼다.

이렇게 다양한 경품들 중 가장 많은 건 화장품이란다. "돈 주고 사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할 정도. 모두 잡지를 일곱 종류나 정기구독하고, 경품 관련 사이트 2~3 개를 매일 같이 뒤져가며 꼬박꼬박 행사에 응모한 결과다. 대부분 글을 써야 하는 것들이니 하루에 10~20분씩 시간도 제법 잡아먹는다. 이렇게 민주씨가 응모하는 경품행사는 한 달이면 대략 30건쯤. 그리고 이 중 6~7군데에선 당첨돼 선물을 받는다. 돈으로 치면 안 돼도 30만원 안팎이다. 민주씨는 문화생활도 경품으로 해결한다. 영화 시사회가 많은 덕분. 효도도 경품으로 한다. 지난해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 티켓을 경품으로 받아 부모님을 모셨다. 각종 선물도 경품이면 OK. 친구 생일이면 경품 화장품 하나를 꺼내든다. 이렇게 써도 써도 경품이 마르지 않자 민주씨는 올 초 또 다른 아이디어를 냈다. 안 쓰는 경품을 팔기로 한 것. 인터넷에 쇼핑몰(www.mjmall.tv)을 열고 경품과 함께 화장품을 팔았다. 지금까지 최고 순익은 한 달에 100만원.

이렇게 운이 좋으니 복권에도 도전해 볼 만하리라. 그러나 민주씨는 고개를 젓는다. "물론 제가 운이 좀 좋긴 해요. 요즘 인기있다는 드링크를 다 함께 마셔도 '한 병 더'가 걸리는 건 항상 저라니까요. 새 병 받으러 가면 동네 수퍼마켓에서도 '또 왔느냐'고 혀를 내둘러요(웃음). 그런데 이상하죠. 딱 운이 그 정돈가? 로또는 절대 안 돼요. 몇 번 해봤는데 숫자 세 개 이상 맞힌 적도 없어요. 그럼 경품은 왜 그렇게 많이 타느냐고요? 음…그건 나름대로 노력하기 때문 아닐까요. 저는 잡지 독자의견 경품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거든요. 먼저 기사들을 전부 꼼꼼하게 읽고, 칭찬해야 할 부분과 비판해야 할 부분을 나눠 메모를 해두죠. 그리고 잡지들을 번갈아 가며 정기적으로 의견을 보내요.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는데요. 그저 운만 좋으면 되는 줄 알고 따라하려던 친구들, 제 얘기 듣고 귀찮아서 못 하겠다면서 다 두 손 들었어요."

이런 정성 덕분에 이제 어지간한 잡지사 경품 담당자들이랑은 얼굴까지 익히고 지내게 됐다는 민주씨. "응모해놓고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두근두근한 게 좋아 계속 응모하게 돼요"라고 경품 예찬론을 펼치던 그녀는 "그래도 경품 가격에도 신경쓰시겠죠"라는 물음에 눈을 찡긋했다. "호호. 물론 그렇죠. 사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재테크가 어딨어요. 밑천도 하나 안 들잖아요."

글=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김민주씨의 글쓰기 경품타기 비법

(1) 정보를 모아라

경품 행사 정보를 모아둔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잡지나 신문도 좋은 정보원. 매일 확인하며 어떤 행사들이 열리고 있는지를 파악하라.

(2) 행사를 골라라

글을 잘 쓸 수 있는 분야의 행사를 골라 응모하라. 소비자평 하나를 써도 평소 관심이 있던 상품에 대해 쓰기가 훨씬 수월하다.

(3) 꼼꼼하게 살펴라

독자의견이든 소비자평이든 '평소 관심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로 꼼꼼하게 읽고 써봐야 한다.

(4) 사연을 덧붙여라

소감만 집어넣으면 글이 딱딱해져 읽는 맛이 없다. 일단 읽히는 게 관건. 생활 주변에 있었던 자잘한 사연을 덧붙여 공감대를 불러 일으켜라.

(5) 잊지 말고 메모하라

앞으로 있을 행사와 자신이 응모해놓은 행사의 발표일 등을 메모하라. 이걸 게을리하면 자칫 당첨된 상품도 타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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