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일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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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러시아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의 형벌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똑 같은 일의 끝도 없는 반복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자신의 체험담이기도한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얘기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죄수들이 하는 일중 여기에 있는 흙을 저리로 옮기고, 그 흙을 다시 이리로 옮기고 하는 일이 있는가 보다 그 일을 죽기보다 싫어 한다는 것이다. 죄수들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해 탈옥도 하고, 자살도 한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기약도 없이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리이이 될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세계가 시베리아의 감옥아닌 이 현실세계에도 있다. 바로 북한이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그저 『김일성수령』이요 『어버이 아무개』다. 노래도, 춤도, 연극도, 영화도, TV도, 라디오도 예외가 없다. 벌써 40년 가까이 그런 죽기보다 싫은 동어 반복이 계속되고 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반정신병자가 되었을 것도 같다.
하나의 추측이지만 최은희·신상옥의 납북은 북한의 어떤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같기도 하다. 시베리아의 유형자들이 『흙을 옮기는 형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하는 상황과 비유할 수 있다.
그들은 그동안 북한주민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준 이른바 그들의「예술」이 기법상 두터운 벽에 부딪쳐 더 이상 누구의 홍미도 끌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신상옥·최은희가 평양에서 『돌아오지 않는 일대』란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그런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그 영화를 감독했을 신상옥이나 연기를 했을 최은희가 얼마나 신명이 나 좋은 「작품」을 보여 주었을지 궁금하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자유 세계의 연예인들이 공산세계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예는 너무나 많다. 프랑스의 명우 「이브·몽탕」은 1950년대 이후 자타가 공인하는 친공배우였는데, 지금은 공산주의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위험』이라고 무대 아닌 현실 속에서 외치고 있다.
거꾸로 공산세계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연기인들은 오히려 밝고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안무가 「누레예프」나 챌리스트 「로스트로포비키」는 대표적인 예다.
최은희·신상옥의 납치극은 그들 자신의 비극임은 물론, 북한도 결국 얻을 것 없는 하나의 실패극이 되고 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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