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2005년의 어이없는 수' 후보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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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하이라이트>
○. 뤄시허 9단(중국) ●. 이세돌 9단(한국)

'이세돌'이란 이름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세돌은 치타처럼 빠르고 고양이처럼 영리하다. 번득이는 감각과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러나 때로는 기분에 취해 스스로 부러져 버린다. 이세돌은 그래서 매력 덩어리다. 절제된 전쟁터인 바둑판은 이세돌로 인해 종종 판타지가 된다.

장면 1=이세돌 9단이 65로 한 점을 잡자 뤄시허(羅洗河) 9단도 66으로 확고하게 안전을 확보한다. 여기까지 뤄시허가 특유의 속기로 하변 흑진을 휘젓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백 우세를 단정하기엔 이르다. 백이 잘 풀렸다고는 하나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고 명백하게 우세가 드러난 것은 아니다.

한데 이세돌 9단이 바로 이 장면에서 터무니없는 착각수를 둔다. 67로 그냥 단수하는 바람에 68로 뚝 끊긴 것이다. '참고도' 흑 1로 먼저 들여다보면 단점은 사라진다. 너무도 쉬운 수다.

이것을 놓친 67은 '2005년의 가장 어이없는 수'후보에 오를 만한 대착각이다. 이세돌은 아마도 딴 생각 하다가 68의 절단을 깜박 잊었을 것이다.

장면 2=땅을 치고 탄식을 해봐도 69, 71로 몰아 넉 점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 73의 후수 연결도 눈물나지만 어쩔 수 없다. 여덟 집 정도가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사라졌다. 한 집은 땅이요, 두 집은 하늘이라는 절정 고수들의 세계에서 여덟 집을 날렸으니 판은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72까지 넉 점이 우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프로들은 흐흐흐 웃고 있다. 메이저 세계대회를 세 번 연속 제패한 세계바둑의 '마왕'이 이런 식의 실족을 하다니! 하나 그게 이세돌의 매력이기도 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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