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동산·공모주 좇아 초단타 투기 극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초저금리를 피해 고금리를 좇는 3백80조원의 돈이 자금시장을 떠돌면서 곳곳에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돈이 부동산에 몰리면 부동산 과열이, 공모주에 몰리면 공모주 경쟁이 일기 일쑤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이다 보니 조금만 금리를 더 얹어주는 금융상품이 있으면 곧바로 자금이 이동한다. 그러다 보니 금융시장이 냉.온탕을 거듭하면서 자금 흐름이 왜곡돼 투기판처럼 변해가고 있다.

최근 외환은행은 하이브리드 채권을 판매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 이 은행이 지난 16일부터 판매한 2천5백억원 규모의 하이브리드 채권이 이틀 만에 모두 팔렸다. 국민은행도 26일부터 3천억원 규모의 하이브리드를 전국 지점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해 이날 하루에만 4백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하이브리드(Hybrid.신종 자기자본증권)는 주식처럼 만기가 없고, 채권처럼 일정 기간마다 이자를 준다. 정기예금보다 높은 연 6~8.5%의 확정금리를 주지만, 은행 사정에 따라 이자를 주지 않을 수도 있는 증권이다.

국민은행 이달수 재무팀장은 "발행 은행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거나 적기시정조치를 받으면 이자지급이 중단될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워낙 다른 금융상품 금리가 낮아 높은 이자를 주는 하이브리드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냉탕이던 공모주 시장이 깨어난 것도 부동자금 덕분이다. 지난 14,15일 게임업체인 웹젠의 공모주 청약엔 코스닥 시장 사상 두번째로 많은 3조3천50억원이, 그 직후 이어진 씨씨에스의 청약에는 2천38억원이 몰렸다.

이처럼 공모주 시장에 부동자금이 몰리자 올들어 시장 눈치만 보며 공모를 늦춰왔던 기업들이 6월 이후 등록 청구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시장 관계자는 "올 들어 5월까지 1백75개 기업이 예비심사를 청구하겠다고 했지만 주식시장 침체로 26일 현재 41개사만 심사를 청구했다"며 "그러나 최근 부동자금이 몰리면서 다음달 심사 청구를 계획하는 회사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은 더하다. 정부 규제의 틈새를 찾아 부동자금이 급속히 몰렸다가 수익을 올리고 빠져나가는 '초단타 투기성 투자'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LG건설이 비투기과열지구인 경기도 양주에서 아파트 청약을 받은 결과 10대 1의 경쟁률로 1순위 청약이 마감됐다. 최근 삼성물산이 분양한 주상복합아파트 '마포 트라팰리스'도 이틀 만에 계약률 1백%를 달성했다.

정부의 부동산 투기억제대책을 비웃듯 비투기과열지구 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에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주식.회사채 시장은 냉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역대 최고인 62조원에 달했던 머니마켓펀드(MMF) 수신고는 SK글로벌.카드채 사태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최근 37조원으로 두달 새 20조원 넘게 줄었다.

빠져나간 MMF자금은 은행권의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증시로의 유입은 거의 없었다. 안전한 국공채를 선호하는 대신 카드채를 포함한 회사채는 거래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 채권시장의 양극화 현상도 여전하다.

이런 자금의 '떠돌이'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우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MMF 수탁고가 급격히 늘어났다. 부동산 시장 과열도 해를 넘기고 있다. 경기 부양에만 신경을 써온 정부의 일관성없는 대책이 준비안된 저금리 시대의 함정을 자초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중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조그마한 금리차이에도 돈의 흐름이 급속히 바뀌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투기 억제책 등 '두더지 잡기식'의 처방만으로는 부동자금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대신경제연구소 조용찬 수석연구원)

"지금처럼 국공채 등 안전 채권에만 돈이 몰린다면 시중금리는 4% 이하로도 내려갈 수 있다. 그 경우 부동자금이 토네이도식으로 휩쓸고 다니면서 경제 전반을 어지럽히는 현상이 심화할 것이다"(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남일총 교수는 "지금은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없거니와 가계와 기업 부실 때문에 금리를 올릴 수도 없다"며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부실기업 정리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