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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은 돌연변이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잇단 강력사건에 온 사회가 비상이 걸렸다. 강도·살인·가정파괴의 흉악범이 밤도 낮도 없이 날뛰고 있는 상황이니 불안하고 격앙된 분위기일수밖에 없다.
요즘 도둑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고 잘 놀기 위해 돈을 턴다.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아무 이웃이나 담을 넘고, 너무 쉽게 목숨까지 앗는다. 턴 돈이 적다고 화풀이로 칼을 휘두르고 부녀자를 가족들 앞에서 욕뵈는 몹쓸 짓도 예사로 한다. 시민여론의 일각에서는 이같은 흉악범들을 공개 처형해야 한다는 흥분된 목소리까지 들린다. 사실 최근에 잇단 흉악범들의 소행은 선량한 대다수 시민들의 양식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같은 범죄의 급격한 증가와 흉포화가 갑자기 생겨난 돌연변이 현상은 아니다.
인간이란 원래가 생리적 기본욕구를 충족시키고도 잉여의 에너지를 창출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본능적 성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잠을 잔다.
그러나 인간만이 배가 불러도 일을 하고 몸을 움직여 더 이상의 것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인류는 발전해 왔고 우리도 좁은 국토에서 오늘의 고도성장을 이루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것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인간다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지탄의 대상이 되고있는 가정 파괴범의 소행도 본질에서는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그들을 가리켜 금수와 같다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짐승들의 섹스는 종족의 보존· 번식이라는 필수적 요구에 한정된다. 인간만이 섹스를 사랑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파멸적 범죄로 이끌기도 한다. 강간과 같은 범죄행위를 설명하는데 금수를 끌어들이는 것은 동물에 대한 모욕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의 섹스가 필수적 요구에 한정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물은 인간에 비해 훨씬 청빈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범죄도 지극히 인간적의 하나인 것이다. 다시 말해 흉악한 범인도 별종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길러낸 우리의 이웃이고 형제인 것이다. 따라서 범죄에 대한 책임도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만이 여력을 이용해 동물이 할 수 없는 낭비나 어리석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여력의 축적이 커지면 커질수록 낭비나 범죄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적 성장·발전의 목표도 이런 시각에서 볼 때는 결국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간이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감성적 욕망을 어떻게 도덕적 행동규범으로 승화시키느냐에 있다.
발전과 성장을 통계와 수치로 나타나는 물량적 실적으로만 파악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보는 이른바 경제제일주의를 심각하게 되새겨 볼 때가 된줄안다.
눈에 보이지 않고 통계수치에 나타나지 않은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을 무시한 대가로 우리는 오늘의 사회적 혼란이란 간접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외형만 갖추고 실적만 올리면 수단이나 과정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믿는 풍조가 개인에게는 내 욕심만 채우면 된다는 그릇된 이기적 행동양식을 심어놓았다.
수단과 과정이 도외시되는 마당에 성실과 정직이 발붙일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하며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한 인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리라는 기대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성실하고 정직한 기대가 실현된 적이 별로 없다. 성실하고 정직한 기대가 여지없이 좌절당한 쓰라린 체험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삶을 영위해야 살아남고 치부도 할 수 있다는 편법에 익숙해져 왔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서 오히려 범죄가 느는 역설이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경찰이 비상령을 내리고 지금까지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이웃끼리 갑자기 인사를 트고 비상연락망을 짠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그러한 사회를 관리할 새로운 생활규범의 정립이 요청된다. 이를 위해서 우선 결과만 존중되는 사회에서 결과와 똑같이 수단과 과정의 정당성, 합법성, 합리성이 평가되는 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겠다.
정부는 국민에게, 어른은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가치관을 말이나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실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금창태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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