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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반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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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는 원래 약냄새 속에서 양육된 생물학도였다. 그는 신흥 왕국인 마케도니아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던것이다.
그는 「플라톤」 의 아카데미에와서 20여년간이나 수업읕 쌓는동안 「아카데미의정신 (Nous)」이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예지의 화신으로 군림하였다. 「플라톤」 이 오히려 그를 책벌레라고 빈정거릴 정도였다.
야심에 찬 당대 최고의 군주인 「필리포스」 가 아들 「알렉산더」 의 스승으로 그를 선택한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겨우 13살밖에 안된「알렉산더」 로부터 『나는 권력이나 영토의 확장보다는 선에 관한 지식에서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기를 바랍니다』라는 편지를 받고 기꺼이 아테네를 떠나 2년간 봉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의 철학은 「플라톤」 이 도달한 지점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곧 그가 스승의 사상을 더욱발전시켰다거나 극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전혀다른 종류의 기질과 배경을가진 사람이었고 이것이 그의 철학에 반영되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를 기하학과 생물학의 차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사물에 대한 기하학적 관점을 확대하여 영원하고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창안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 자체를 생물학적인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실제로 눈에 나타난 현실의 세계에서 불변하는 변화의 원리를 찾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플라톤」은 민족적 요소가 강하고 신화와 시적 표현을 즐겨 썼으며 직관이란 방법을 써서 존재를 하나로 파악해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성을 강조하고 수식이 없는 산문체나 냉철한 분석을 좋아하였으며 현상의 여러모습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한마디로 「플라톤」 은 종교적 성향을 띠고있는 반면 「아리스토탤레스」는 과학적 기질을 철학에 반영하였다고 볼수 있다.

<냉철한 분석즐겨>
「아리스토텔레스」 는 우선 진정한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플라톤」 의 입장을 따른다.
그러나 그는 그 공통성에 「이데아」 라는 이름을 붙여서 우리가 알수없는 그 무엇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모방」, 「참여」, 「복사」등의 표현은 단순한 비유적 수사에 불과할뿐 구체적인 사물과 이데아와의 관계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도토리와 참나무>
예를들어 철수나 순이와같은 구체적인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이데아를 모방했기 때문에 사람이 된것이라고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의 ,이데아에 참여할수 있을까.
또 이데아가 여러개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들은 더 높은 이데아를 무한히 반복해서 모방해야 되지않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며 「아리스토텔레스」 는 『이데아가 원형이고 다른 사물이 그것에 관여한다는것은 공허한 말이며 시적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고 비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실체로 존재하는것은 우리가 눈으로 볼수있고 만질수 있는구체적인 현상들 뿐이다. 따라서 「플라톤」 이 말하는 「이데아」 란 사물들이 가지고있는 특징들을 우리가 추상화하여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있는것을 없다고 말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것이 허위요. 있는것을 있다고 말하거나 없는것을 없다고 말하는것이 진리다.』
그는 이 「있는것」을 「형상(eidos)」과 「질료(hyle)」라는말로 설명한다. 질료란 아직 무엇이 되기 이전의 상태이고 이것을 안전하게 만드는것이 형상이다. 예를들어 도토리가 땅에 묻혀 싹이나고 그것이 자라서 참나무가 되는경우 도토리가 질료이고 참나무는 형상이다.
그러나 참나무를 베어 집을 지을때 참나무는 다시 질료가 되며 집은 형상이 된다.
그러므로 질료와형상은 고정된것이 아니고 부단히 변화하는것이며 이 변화는 질료가 형상을 찾으려하는 힘,즉 좀더완전한 상태로 움직이려는 운동 (energia) 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모든 질료가 완전한 형상을 찾았을 때,다시말해서 모든 사물들을 움직이게 하지만 스스로는 움직이지않는 「순수형상」 이라는것을 만났을때 끝을 맺게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그것은 만물이 실현해야 할 목적이며 운동의 원인이되는 정신(Nous) 혹은 신이다.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구축한 불변의 「이데아」를 지상에 끌어내려 사물속에 가두어 두고 한 생명체의 탄생과 성장과 소멸을 설명하듯 우주의 본질과 그 운행의 원리를 규명하였다. 「괴테」는 그의 철학적 특징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향하여 한 사람의 건축가와 같이 서 있다. 이제 그는 이미 땅을 딛고 있으며 여기서 활동하고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지반에 대해 묻되 그 근거를 찾기 전에는 결코 더 나가지 않는다. 여기서 대지의 중심까지가 문제이지 그 외의 것은 문제가 안된다.
그는 자기의 건축물에 거대한 뿌리의 원을 그려서 「플라톤」이 천국을 하나의 뾰족한 불꽃처럼 가장 높은데서 찾았듯이 모든 측면에서 자료를 모아다가 정리하고 쌓아서 질서있는 형상으로 피라미드를 높이 쌓아 올린다.』
「아리스토텔레스」 의 철학은 분명히 대지를 딛고 굳게 서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거의 모든분야에 뻗쳐 있어서 물리학·천문학·생물학·정치학·윤리학·예술론등에 산실을 마련해 주었다.

<아테네를 탈출>
그러나 그의 철학이 철학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철학은 대지에 내린 뿌리의 깊이만큼이나 하늘로도 높고 넓게 펼쳐진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상상력의 소산으로 해석할 정도로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이 점은 그의 말년에 보여준 처신에도 잘 나타난다.
「알렉산더」가 세계정복의 원정길에서 죽고 아테네도 다시 독립을 찾게 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도나 희생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가르쳤다하여 기소되었다. 그러나 그는「소크라테스」 의 운명을 따르지는 않았다.
『아테네가 철학에 대해 또다시 죄를 짓게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이 도시를 탈출했던 것이다. 이후 철학은 「플라톤」의 이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 사이를 방황하게 되었다.
분명히 「있는 것」을 있다고말하는 것이 진리이겠지만 과연 무엇이 진정으로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철학자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따라서 진리에 대한 견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프로타고라스」의 망령을 철학은 쉽사리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엄정식<서강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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