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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대통령, 특2급 호텔서 묵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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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4일 대구시 호텔수성에서 김관용 경북지사가 물라투 테쇼메 에티오피아 대통령(가운데)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경북도]

“6·25 혈맹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 우리가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때는 1인당 국민소득이 65달러에 지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였다.”(김관용 경북도지사)

 “대구에 와 보니 한국인은 열정이 있고, 정이 깊고, 스스로 발전하려는 욕구가 우리 에티오피아와 닮았다. 앞으로 새마을운동을 에티오피아 7만5000개 전체 마을로 확산시키고 싶다.”(물라투 테쇼메 에티오피아 대통령)

 14일 오전 9시 대구 호텔수성에서 김관용 지사가 물라투 에티오피아 대통령과 새마을을 주제로 환담했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때 황실친위대 6000여 명을 파병한 나라다. 경북도는 2010년부터 에티오피아에서 새마을 시범마을 5곳을 조성 중이다. 이날 접견 장소도 새마을운동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곳이었다.

 물라투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지난 11일 세계물포럼 행사로 대구에 도착한 뒤 3박4일 동안 호텔수성에서 묵었다.

 통상 대통령·총리 등 국빈은 로열 스위트룸이 있는 특1급 호텔을 이용한다. 대구의 경우 인터불고와 노보텔·그랜드 등 4곳이 특1급이다. 호텔수성은 67개 객실이 있는 특2급이다. 그런데도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이곳을 숙소로 잡았다. 객실 202호에 남은 역사적 흔적 때문이다.

 202호 입구에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국가 백년대계를 진두지휘하셨던 곳’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다. 이른바 ‘프레지던트룸’이다.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이 방을 사용했다. 이 방의 옛 주인이 새마을을 주창한 박정희라는 말을 듣고서다.

 202호는 봉황 무늬 문을 들어서면 응접실과 침실이 나온다. 공간은 99㎡로 협소하다. 벽면에는 박 전 대통령 부부와 박근혜 대통령 얼굴 사진, 새마을운동 등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주요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김 지사는 이날 물라투 대통령에게 전시 사진을 설명했다.

 물라투 대통령은 어릴 적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동생과 찍은 사진을 보고는 누가 현 대통령이냐고 묻기도 했다. 202호의 수성못 쪽 바깥문엔 철제 방탄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호텔 주인인 김재석 경일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고향인 구미를 찾기 전 202호에서 내각을 구성했다”며 “국정이 자주 논의된 곳”이라고 전했다. 농업부 장관 출신으로 농촌 개발에 관심이 많은 물라투 대통령도 숙소를 정하면서 이런 인연을 높이 샀다.

 프레지던트룸의 하루 사용료는 319만원. 하지만 호텔 측은 혈맹 나라인데다 국빈임을 감안해 에티오피아 대통령에게 하루 100만원만 받았다. 호텔은 2012년 주인이 바뀐 뒤 국빈을 처음 맞았다.

 대통령의 식사는 연어 스테이크 등 양식이었다. 바나나·딸기 등 과일도 좋아했다. 계정석 호텔수성 상무는 “에티오피아 인사들의 식사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많이 먹지도 않는다는 점이 특이했다”고 전했다. 호텔 측은 대통령이 머무는 동안 객실에 에티오피아 국화인 칼라 꽃바구니를 준비하고 침실에는 장미를 배치했다.

 물라투 대통령은 호텔을 떠나면서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 관계자는 “베리 굿”이라며 “다음에 또 오겠다”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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