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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 친목계모임 20여년 -바람도 쐬고 스트레스도 풀지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리나라 사람, 특히 여성으로 계 한번 안들어 본 이는 거의없을 정도로 계모임은 일반화·대중화되어 있다. 계의 역사는 삼한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만큼 뿌리깊은 것이고, 그 종류 역시 복잡 다양하다.
이렇게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겨온 계는 다방면에 이용되어 여러가지 역할을 해왔기때문에 섣불리 이에 관하여 찬반론을 펴기가 조심스럽기는 하나, 법의 창가에서 계모임은 경계해야할만큼 심각한 역작용 또는 부작용만을 보여줄 뿐이다.
1960연대 이전까지만 해도 계사건은 법원 실무 담당자들에게는 두통거리였다. 법정을 떠들썩하게 하는 계꾼들도 문제려니와 복잡한 번리과정에 판례의 태도도 일관되지 않아서 어느 재판부에 계사건 한건이 배당되면 다른 재판용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계를,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친목계와 재산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재산계로 크게 나누고, 주로 문제가 되는 재산계의 법률적 성질에 대해 판례는 당사자들 사이에 특별한 다튼 약정이 없는한, 이를 돈을 꾸어주고 비는 이른바 소비임차 관계로 해결짓고 있다. 그래서 재산계의 경우라면 갯돈을 타기 전에 계가 깨진 때에는 계주를 상대로 그때까지 불입한 곗돈을 돌려달라고 청구를 해야하고, 반대로 곗돈을 탄 계원이 나머지 불입금을 내지 않으면 계주만이 그 계원을 상대로 불입금을 내라고 할 수가 있다.
법률이론은 계문제를 이렇듯 간단하게 처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계사건은 여전히 복잡한 문제를 낳는다.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해본 계주의 책임이 힘에 겨워 끝내는 자살해버린 계주가 있는가하면, 유령계를 조직해 불입금을 가로채고 몇 년간 잠적했다가 다시 나타나 묘한 방법으로 계주노릇을 해서 또다시 펑크를 내고도 『집어넣으려면 넣으라』고 당당히 큰 소리를 치는 직업 계주도 있다. 아들· 딸이 주는 생활비를 아껴 계를 들었다가 하필이면 당신 차례에 계가 깨져버렸다는 할머니의 눈물어린 하소연에 접할 때면 나는 법률상담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우리 모두 열심히 저축하면 손쉽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하고,계불입금을 은행의 적금표와 대조해보면 앞번호 몇 개, 뒷번호 몇개만을 제외하고는 적금보다 훨씬 못하다고 적극 저축을 권유해 보려면, 으례 상대방은 적금보다 불리하고 또 켸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문턱 높은 은행」 이어서 계를 들어 당장 목돈을 마련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반론을 들고 나오게 마련이다.
매달 11일은 나의 고교동창, 13일은 대학동창의 곗날이다. 점심값을 치르고 나면 옷 한벌을 사입을 수 있을까 말까한 계모임인데, 꾸준히 20여년을 친목계로 지탱해주는 친구들의 마음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나마 1번, 2번은 공동번호로 타두었다가 동창회 기금에, 도서관 건축기금에 군소리 없이 내놓고 희희낙락 즐거워하고, 누구 하나 본격적인 재산계를 해보자는 친구가 없다.
이런 계모임이라면 친목과 공제를 목적으로 삼는 협동체를 구성시켜 주어서 좋고, 또한 우리 여성들에게는 누가 뭐래도 스트래스 해소와 바깥공기를 흡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헬드 클럽이 아니겠는가.
『재산계 조심, 친목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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