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단수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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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다울링」주한 미대사는 일요일인 8월30일 상오 반도호텔에서 만나자고 요청해왔다. 아직까지 이대통령은 나의 재일교포 문제 해결방안에 대해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울링」대사는『「사와다」일본측 수석대표가「맥아더」주일 미대사에게 말한바에 따르면 한국대표단은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에 매달려 시간만 축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일본이 11월13일 이후 북송을 강행할 것으로 미국측은 본다』말하고 『한국측은 일본측에 재일교포 문제에 관한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협정 초안을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충고했다. 그는 미국측은 북송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일본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한국측이 차선책을 강구해야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측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만일 일본이 그에 응하기를 꺼리거나 지연시킨다면 미국측은 일본에 강력한 압력을 가해 조기에 협정이 채결되도록 보장하겠다고「다울링」대사는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미국은 물론 자유세계의 지지를 잃게 되고 많은 수의 재일한국인들이 북한에 감으로써 국제적 위신을 크게 손상받게 될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지론을 다시 장황하게 피력했다.
그는 그밖에도 한일간의 어선나포 사건과 억류자 상호석방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이 좀더 현실의 국제정황에 맞게 유연한 대쳐를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친구를 잃지 않는 길이라고 말하고, 특히 『대일 통상 중단 조처는 오로지 한국 자신에만 타격을 주는 것일 뿐』이라며 현명한 대응을 역설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나는 그가「맥아더」대사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으며, 더우기 미일간에 끊임없이 비밀정보를 교환하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한일회담 내용이나 주일대표부와 일본 외무성간의 교섭내용도 속속들이 알고있어 일본측이 그에 관한 기록들을 미국측에 모두 제공하는 것으로 유추될 정도였다.
일본의 고단수 외교였다. 일본은 어떻게 하든 한국측을 불리하게 만들어 미국을 자기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한일 양자간의 교섭내용을 삼자인 미국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러다가는 심정적이나마 우리에게 동정적인 미국마저 완전히 일본편에 서게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31일 다시 이대통령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건의를 올렸다.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초안 건의서」라는 제목으로 올린 이번의 진언에는 지난번에 올린 세가지 방안중 비현실적인 두 방안을 아예 빼 버렀다.
나는『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재일 한국인의 집단 귀국을 고취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또 상당한 정도의 보상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모든 재일 한국인이 귀국하리란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다수의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 영주권을 선택할 것이고, 그중 일부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게도 될 것이므로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할 일은 영주권 취득 희망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태책을 세우는 길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건의했다.. 만일 정부가 귀국을 원치 않는 동포들을 비애국적이라고 하여 돌보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자국민을 방치한 처사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며, 더우기 공산도배와 일본의 사악한 흉계 때문에 재일동포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이대통령의 누차에 걸친 지시를 거스르는 진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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