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뒷받침 "실속성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경제성장의 패턴이 1년새 많이 달라졌다.
지난82년의 5.6% 경제성장이 아파트등을 많이 지어 억지로 쌓아올린 내실 없는 성장이었다면 지난해의 9.3%성장은 금융의 희생을 딛고 경제 각부문이 실속을 쌓은 성장이다.
즉 지난해에는 제조업의 생산이 79년이후 4년만에 10%이상 늘었고(연간 10.8%증가) 수출도 11.8% 늘어나 경제성장을 이끌었으며, 20.5%의 고성장을 기록한 건설업을 보더라도 아파트등의 주거용 건물(35.2% 투자증가)보다 공장·상가등의 비주거용 건물(38.1% 투자증가) 투자가 약간 많다.
또 81년 0.3%, 82년 1.2%밖에 늘지 않던 기업의 기계시설투자는 지난해에 8.6%나 늘어나 기업의 투자마인드도 약간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렸다.
외형적인 성장률에 더욱 가속이 붙은 것은 둘째치고라도 1년새 경제성장의 내용이 많이 개선된 것이 더욱 바람직스러운것이다.
이렇게 경제의 내용이 다소 좋아진것은 해외경기의 호조로 수출이 잘된데다 국제금리의 인하로 외채이자 부담이 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위에 저물가·저금리정책이 내수와 투자에 불을 붙였다.
지난해 경제성장의 명암은 산업간에 뚜렷했다. 가전·자동차·식품등이 크게 밝아진대신, 금융과 해외건설은 부실의 수렁으로 빠졌다.
즉 지난 한햇동안 컬러TV의 생산은 49.8%, 냉장고는 30.1%, 승용차는 29.3%, 대형트럭은 28.1%씩 늘어나 제조업부문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른바 내구소비재가 붐을 이룬 것이다.
또한 국내건설의 부가가치 생산은 82년의 20% 증가에이어 지난해에도 20.5%나크게 늘어 연2년째 각 산업부문중 가장 높은 성장을 기록했는데 주택건설이 36.8% 늘었고 비주택건설은 40.6%나 늘었다.
비주택건설의 성장을 끌어올리는데는 도심한가운데 우뚝우뚝 서고있는 대형빌딩들이 한몫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난해의 성장 한쪽에는 다른 부문의 성장을 위해 큰 희생을 강요당한 금융과 급격히 사양길에 들어선 해외건설이 있다.
모든 산업이 불황을 털고 성장가도를 달릴 채비를 차리는 가운데 유독 금융업만은 지난해 2.8%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제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금리체제를 지탱하면서 금융업은 크게 멍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금융업의 위축은 GNP 추계상에 나타나는 마이너스 성장률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여러가지 파급효과를 갖는다.
금융과 실물의 균형이 깨어졌을 때 어떤 경제적인 마찰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이미 지난 82년과 83년의 대형경제사고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고, 또 저금리·저배당·저임금 등으로 자원의 배분에 강력히 개입한 정부의 성장정책이 과연 국민경제 전체로보아 얼마만큼의 득실을 가져 왔는지는 1∼2년간의 경제성장률로 판가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그룹의 급속한 확장과 이로인한 생산과 부의 편재현상이 그 단적인 예다.
사양길에 들어선 해외건설도 해외건설 수입의 감소액수 (82년의 24억5천만달러에서 83년의 18억7천만달러로 5억8천만달러 감소)만으로 그 파급효과를 계산할 수 없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부실해외건설업체들에 각 은행이 깊숙이 물려있는것도 과거 해외건설의 지원을 위해 정부가 자원의 배분에 깊이 간여했기 때문이다.
특정산업의 고성장뒤에 반드시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랐던 과거의 경험을 다시한번 반추해볼 때다. <김수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