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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떴습니다, 드론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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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TR-60

“바람의 방향은 어떻습니까. 이륙을 시작합니다.”

  지난 10일 오후 전남 고흥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고흥항공센터의 야외 이착륙장은 분주했다. 10만㎡ 대지에 주변의 얕은 동산을 제외하고는 사방으로 하늘이 트여 있어 비행 시험에 적합한 곳이다. 이날은 국내에서 개발한 무인항공기들이 한 곳에 모였다. 한국형 드론의 현재를 시연하고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해외서 틸트로터 기술 보고 공동개발 제안

 가장 주목을 받은 무인기는 틸트로터 기술이 적용된 ‘TR-60’이었다. 틸트로터는 이착륙 땐 프로펠러가 달린 엔진을 수직으로 세워 양력을 얻고, 비행할 땐 수평으로 눕혀 추력을 얻는다. 이착륙은 헬리콥터처럼, 비행은 고정익기처럼 하는 셈이다. 헬리콥터처럼 좁은 공간에서 뜨고 내릴 수 있으면서도 시속 24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틸트로터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하얀색 바탕의 기체 끝부분과 양쪽 프로펠러의 끝 부분(로터)만 붉은색으로 칠한 이 무인기는 헬리콥터보다는 크기가 훨씬 작았다. 수직으로 천천히 떠오르는 모습은 작은 헬리콥터 같았다. 고도 300m 상공에서 관람객 머리 위로 여러 차례 비행한 뒤 속도를 시속 160㎞까지 끌어올렸다. 처음 들리던 ‘윙’ 소리가 차츰 작아졌다. 항우연 김재무 연구위원은 “지금은 로터를 눕혀서(틸팅·tilting) 비행기처럼 날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1950년부터 헬리콥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틸트로터 기술 개발을 시작했지만 실용화까지 50년이 걸렸다. 미국 해병대가 쓰고 있는 다목적 수직이착륙 비행기 ‘V-22 오스프리(Osprey)’가 현재 사람이 탈 수 있는 유일한 틸트로터 항공기다. 미국 벨사는 ‘이글 아이’란 무인 틸트로터기를 개발했지만 상용화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국내에선 항우연이 최대이륙중량이 995㎏에 달하는 무인 틸트로터기 ‘TR-100’ 개발에 성공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정부(872억원)와 민간(한국항공우주산업·98억원) 예산 970억원이 들었다. 그러나 상품으로 팔기에는 크기가 컸다. 원양어선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한 사이즈로 줄여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 모델의 크기를 60%로 줄인 게 ‘TR-60’이다. 최근엔 40%로 크기를 줄인 ‘TR-40’을 개발하고 있다. 무인 틸트로터 상용화에 성공하면 전세계에서 첫 사례가 된다.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TR-60’ 한 대를 구성하는 세트가 비행기 동체와 지상관제장비, 통신장비 등을 포함해 140억원이 훌쩍 넘는다. 항우연 안오성 항공기획실장은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국내 틸트로터 개발에 관심이 많다. 헬리콥터로 유명한 회사가 공동 개발까지 제안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진 항우연 항공연구본부장은 “TR-60은 의약품으로 치면 임상시험격인 체계 개발과 시스템 안정화 등을 거쳐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받으면 2020년쯤 상용화가 가능하다”며 “원양어선의 참치 어군 탐지, 군 정찰기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틸트로터가 빨리 나는 무인기라면 ‘고고도 장기체공 전기 동력 무인기(EAV)’는 높이 나는 무인기다. 고고도 무인기 ‘EAV-2’는 자동차에 부착된 상태에서 활주로를 달렸다. 이륙에 필요한 양력과 추력을 얻기 위해서다. 일정 속도를 넘겼을 때 자동으로 차와 분리돼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큰 잠자리 모양으로 군살하나 없이 매끈한 비행기가 크게 나선형으로 돌면서 조금씩 고도를 올렸다. 항우연 관계자는 “매나 독수리가 고도를 올릴 때 상승기류를 타면서 서서히 올라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긴 양쪽 날개에는 태양광 패널이 부착돼 있어 높이 올라간 뒤에도 오래 머무를 수 있다. 태양광발전으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동력을 얻는다. 지난해 ‘EAV-2H’ 모델은 10㎞ 상공에서 25시간 40분 비행 기록을 세웠다. 항우연은 올해 6~8월쯤에 고도 12㎞ 이상의 성층권에서 비행시험을 할 예정이다. 주 본부장은 “인공위성이 특정지역에 하루에 2~3번 돌아온다면 고고도 무인기는 한 곳에 장시간 떠있을 수 있어 기상이나 교통 정밀관측, 위성통신 중계 등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업체서 만든 농약살포·촬영기도 선봬

 이날 국내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멀티로터’ 시연도 진행됐다. 이미 일상생활에 들어와 있는 모델들이다. 헬리콥터 원리로 떠오르는데 지상의 사람들이 조종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사람이 손으로 던져 비행을 시작하는 ‘리모아이(제조사 유콘시스템)’와 농약 살포가 가능해 농사에 활용되는 ‘AFOX-1S(카스콤)’, 주·야간 촬영이 가능한 ‘아리스 비틀 옥토(네스앤텍)’ 등이 환호성을 자아냈다.

 재난 구조와 물류배송, 개인경호 등 드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미 아마존·알리바바는 물류 배송, 구글과 페이스북은 인터넷 접속을 위해 드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재난 예측도를 높이고 복구작업에 투입하기 위한 재난용 무인기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 국내 무인기 기술은 전세계 7위권으로 평가받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고흥항공센터(전남)=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영상 유튜브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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