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국전쟁 고아 출신 미국 홀트 부회장 수잔 콕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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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게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창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한국은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한국인들만의 것입니다."

지난 20일 방한한 수잔 콕스(51) 홀트 국제 아동복지회 부회장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한 불행한 아이들이 생기지 않는 다면 가장 좋고 생기더라도 그 아이들이 한국에서 새로운 부모를 만날 수 있다면 그 다음으로 좋은 일"이라며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힘들다면 해외입양도 차차선 책으로 훌륭한 방법" 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한국인들의 또 다른 선입견"이라며 "대부분의 입양아들은 자라면서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받아 들인다"고 덧붙였다.

언뜻 들으면 '고아 수출국'한국의 입장을 좋은 말로 호도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말이다. 하지만 콕스 부회장에겐 이런 말을 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 자신이 바로 한국전쟁 당시 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아로 태어나 버려진 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으로 입양된 것은 4세였던 1956년.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지저분하고 복잡한' 고아원 생활을 하다 오리건주(州) 브라운 힐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콕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다행히 양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와 한국인 남자아이를 입양한 이후 양부모는 자식을 셋이나 낳게 됐지만 입양아와 친자식 사이에 전혀 차별을 두지 않았다. 주위 환경도 좋았다. 인구가 5백명밖에 안 되는 소도시에서 동양인이라고는 콕스 부회장과 한국인 남동생뿐이었지만 아무도 자신들을 백안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흡족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어린 수잔이 마냥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면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한국에 대한 허기'가 늘 뒤따랐기 때문이다.

"양부모님은 늘 저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부모님들은 한국에 대해 아시는 게 거의 없었죠. 70년대 초까지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으니까요."

그래서였을까. 콕스 부회장은 76년 '홀트에 가면 한국과 관계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홀트 국제 아동복지회에서 비상근 근무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83년부턴 상근 근무자로 전환, 경력을 쌓아갔고 지난해에는 회장 후보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2000년에는 홀트의 임원자격으로 백악관 산하 '아시아.태평양인 위원회'에 몸 담기도 했다.

콕스 부회장은 입양아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틈틈이 개인적인 '허기'도 채워나갔다. 78년 첫 방문을 시작으로 30여차례나 한국을 드나들면서 모국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 그 결과 10여년 전부터 아예 '김순(金順)'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할 정도로 한국화했다. 그리고 92년에는 꿈에도 그리던 생모에 대한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신문에 광고를 냈더니 어머니와 한국인 남편 사이에 태어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죠.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다음이었어요. '제가 이렇게 잘 자랐어요'라고 말씀해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니 얘기에 금세 눈시울을 붉혔던 그는 이번 방한의 목적을 묻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기를 되찾았다.

그는 내년 8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한국입양아 대회' 준비를 위해 방한했다고 한다. 서울대회는 미국 워싱턴(99년), 노르웨이 오슬로(2001년)에 이어 세번째로 열리는 대회로 1천여명의 한국인 해외 입양아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해외입양아들은 한국과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들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내년 행사에 한국 국민들도 많은 관심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글=남궁욱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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