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른의 자격 다시 생각", 자녀 "어울릴 친구 있어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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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5일 남녀 중학생과 엄마들이 팽목항을 찾았다. 왼쪽부터 이은주(48)씨, 김하연(14)양, 최준(16)군, 김선희(44)씨. [프리랜서 오종찬]

진도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 그날처럼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잔뜩 흐린 하늘에선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잔물방울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한때 실종자 가족과 구조대,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던 그곳은 사람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5일 본지는 주부 김선희(44)씨와 아들 최준(16·중 3)군, 이은주(48)씨와 딸 김하연(14·중 1)양과 함께 팽목항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는 평범한 주부이자 학생인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한편에 마련된 추모 테이블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곳곳에 매달린 노란 추모 리본들은 대부분 글씨가 번지거나 색이 바랬다. 최군은 “비바람에 낡아 버린 리본들을 보니 마음 아프다. 1년이 참 빨리 흐른 것 같다”고 했다.

 그 1년 동안 이들 가족의 삶에 큰 변화가 있었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 김선희씨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들의 학업 성적이었다. 고액 과외도 여러 개 시켰다. 늦게 귀가하는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참사 후 과외를 대부분 끊었다. 김씨는 “학업에 시달렸던 아들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는 시간을 늘렸다”고 말했다.

 이은주씨는 “엄마의 자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지시를 따르다 희생된 학생들이 눈에 밟혀서다. 이씨는 “예전엔 단지 엄마이고, 어른이라는 이유로 딸에게 명령조로 말하기도 했다”며 “이제는 딸아이와 자주 대화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본지가 빅데이터 전문업체 다음소프트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학부모, 학생들의 가치관을 뒤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후 1년간 주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시험’ ‘성적’ ‘조기교육’ 등 학업과 입시에 관련된 단어들을 언급한 횟수는 참사 이전(2013년 4월 16일~2014년 4월 15일)보다 모두 감소했다. ‘시험’은 참사 이전 715건에서 참사 이후 643건으로 72건 줄었고, ‘성적’(333건→321건), ‘조기교육’(267건→261건)도 각각 12건, 6건 줄었다.

 반면 ‘안전’ ‘가족’ ‘안전교육’ 등 가족의 안정과 행복에 관련된 단어의 사용은 크게 증가했다. ‘안전’은 112건에서 530건으로 다섯 배 가까이 늘었고, ‘가족’은 88건에서 190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안전교육(76건→303건)’도 네 배 늘었다.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대 커뮤니티에서 ‘집’ ‘엄마’ ‘친구’ 등 가족이나 지인의 행복과 관련된 키워드가 언급된 횟수는 크게 증가했다. ‘집’은 1236건에서 2380건으로 92.6% 늘었고, ‘엄마’(1055건→1849건), ‘친구’(2871건→4705건) 역시 각각 75.3%, 63.9% 증가했다. “엄마·아빠 탓을 하며 짜증 내지 않겠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희생자 몫까지 열심히 살고 싶다”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팀장)·유성운·채윤경·손국희 기자 foneo@joongang.co.kr, 자료 =다음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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