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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수안보에선 '꿩 대신 닭' 찾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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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예부터 그곳 사람들은 꿩 사냥을 즐겼다. 겨울이면 살이 통통히 오른 꿩을 잡아 탕을 끓였다. 이정식(67)씨도 그런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형들이 꿩을 잡아오면 어머니(1983년 작고)는 무를 동강동강 썰어 넣고 고춧가루 양념을 해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끓여냈다. 1950년대 후반 이씨가 충북 충주시(당시는 중원군) 수안보면에서 자라면서 겪은 일이다.

 70년대 들어 마을 이곳저곳에서 꿩 사육을 시작했다. 중원군이 농가소득 증대사업으로 꿩 사육을 장려한 때문이다. 꿩 사냥터로 알려졌던 수안보는 꿩을 기르기에도 적절한 자연조건을 갖췄다. 원래 꿩은 성질이 급하고 예민해 주택가에서 기르면 죽기 일쑤고 알도 낳지 않는다. 수안보 주민들은 그래서 인적이 드문 야산에 사육장을 만들었다.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예나 지금이나 주인도 하루에 한 번 사료를 줄 때만 찾고 있다. 닭처럼 수백 마리를 한 공간에서 키우면 서로 싸우기에 칸막이를 치고 30마리 정도씩 나눠 키운다.

 놀이공원에서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던 이정식씨 역시 꿩 사육을 하기로 마음먹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80년의 일이었다. 수안보 주정산 자락 오산마을의 집에 자리 잡고 꿩 2000마리를 키웠다. 그러다 꿩 식당까지 꾸리게 됐다. 그냥 살고 있는 집에서 메뉴라고는 꿩탕 하나를 내놓는 조촐한 식당이었다. 예전 어머니가 만들던 꿩탕에 표고·팽이버섯 등을 첨가해 맛을 더 냈다.

꿩요리촌 원조 식당인 주정산 가든의 이정식 사장. 1980년 식당 문을 열었다.

 86년 원래 집에서 2㎞가량 떨어진 수안보온천 지역에 ‘주정산가든’이란 식당을 차렸다. 그게 원조가 됐다. 온천에 놀러 왔던 관광객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식당이 붐볐다. 어디나 그렇듯 이내 꿩 요릿집들이 들어섰다. 지금은 수안보온천 일대에 50여 곳이 ‘꿩요리촌’을 형성하고 있다.

 경쟁 식당들이 생기면서 요리가 다양해졌다. 주정산가든은 샤부샤부를 제일 처음 개발했다. 온갖 시행착오 끝에 꿩고기를 회처럼 얇게 뜨는 방법을 찾아냈다. 갓 잡은 꿩의 가슴살을 냉장고에 두 시간 정도 넣어두었다가 썰어내는 방법이다. 꿩 뼈를 우려낸 육수에 2~3초 담갔다가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호텔요리를 전공한 조카며느리 지명순(45)씨도 가세해 꿩육회와 꿩불고기를 만들어냈다. 육회 재료는 가슴 안살이다. 가슴살 중에서도 제일 안쪽에 있는, 갈비뼈와 맞닿은 부분이다. 1㎏짜리 꿩 한 마리에서 80~9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를 육회 재료로 택한 것은 제일 연하기 때문이다. 이 가슴 안살에 채 썬 배·사과를 넣고 설탕·간장·깨소금·참기름 등으로 양념을 한다. 지난 10일 주정산가든에서 꿩육회를 맛본 한창근(69·경기도 성남시)씨는 “고기가 살살 녹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꿩고기에 대해 “날로 먹으면 4만원, 익혀 먹으면 400원”이라는 육회 예찬론자도 있다.

 꿩불고기에는 다리 살과 날개 살을 쓴다. 사과·당근·양파를 넣고 볶다가 나중에 고기를 넣고 3분 정도 강한 불로 조리한다. 사과는 충주 특산물이어서 한번 넣어봤다가 달달한 맛이 그럴듯하게 어울려 계속 썼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곱게 다진 다리 살과 무말랭이·부추·두부로 속을 만드는 ‘꿩만두’, 수안보에서 나는 산나물을 쌀가루와 섞어 부치는 ‘꿩산나물전’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꿩 육수로 담근 백김치도 나온다. 수안보 지역에서 예전부터 김치를 담그던 방식이다.

 다른 식당들도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사과 위에 밥을 얹고 다시 생선회처럼 썬 꿩 가슴살을 올려 놓는 ‘꿩사과초밥’, 허벅지 살에 은행과 버섯을 꽂아 살짝 튀겨먹는 ‘꿩꼬치’, 여기에 ‘꿩탕수육’ ‘꿩산적’ 같은 메뉴를 집집마다 추가하면서 꿩 요리는 수안보를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이젠 코스요리까지 나온다. 주정산가든은 꿩샤부샤부·꿩만두·꿩불고기·꿩육회·꿩산나물전·꿩탕 6가지로 코스요리를 구성했다. 코스요리는 대체로 2인 기준 5만~6만원이다. 지난 9일 꿩 요리촌에서 만난 이재하(62·충북 옥천군)씨는 “꿩 구이를 먹어본 적은 있지만 각양각색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꿩 코스요리는 처음”이라며 “꿩육회와 꿩샤부샤부 요리가 담백하고 깔끔했다”고 말했다.

  충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옛 문헌 속의 꿩

『동의보감』 등에는 꿩고기가 간에 기력을 더하고 눈을 밝게 한다고 쓰여 있다. 18세기 농업서적 『증보산림경제』는 꿩육회 만드는 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겨울에 잡아 내장은 빼고 눈이나 얼음 위에서 꽁꽁 얼린 뒤 얇게 썰어 초장과 생강·파와 함께 버무려 먹는다.”

꿩고기의 영양소

꿩고기는 단백질이 많고 지방이 적다. 살코기 열량이 100g당 113㎉로 껍질 벗긴 닭고기와 비슷하다. 삼겹살(331㎉)에 비하면 3분의 1 정도다. 칼슘·인·철분이 골고루 들어 있고 활성산소를 없애 노화를 막아준다는 오메가3 지방산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꿩 대신 닭’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설에 먹는 떡국은 원래 꿩고기를 넣어 끓였다. 꿩을 상서로운 새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일반 가정에서 꿩을 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닭고기로 대신할 때가 많았다. 여기서 연유한 말이 바로 ‘꿩 대신 닭’이다.

사진 설명

꿩요리는 산란기(4~6월)인 요즘이 제철이다. 사진은 수안보 꿩요리촌의 갖가지 음식들. 사진 ① 꿩산나물전 사진 ② 꿩육회 사진 ③ 꿩불고기 사진 ④ 꿩탕 사진 ⑤ 꿩샤부샤부 사진 ⑥ 꿩만두.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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