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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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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32면

원저: 발타자르 그라시안, 라 로슈푸코, 라 브뤼예르 엮은이: 한상복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가격: 1만3000원

이상하다, 세상은. 능력은 별로면서 윗사람에게만 잘하는 선배들이 승승장구한다. SNS를 켤 때마다 남들 사는 건 행복 그 자체다. 함께 뒷담화를 했던 친구가 바로 그 당사자 앞에서는 충성심을 드러낸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분명 불공정하고 거짓된 처사인데 세상은 그럼에도 잘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필요한 사람인가』

답은 간단하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솔직한 사람이 되겠다는 희망만 품지 않으면 된다. 교실에서 수없이 배웠던 금과옥조의 교훈과 이별해야 한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내 것을 챙긴다고 곧 위선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화장발 없는 삶의 진실’을 알고, 여기에 대처하는 게 나은 선택이다.

각박한 요즘에 나온 지침이 아니다. 이미 17세기 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8),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1613~1680), 장 드 라 브뤼예르(1645~1696)이 그들이다. 교과서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낯선 이름이지만 18세기 계몽주의 탄생의 밑거름이자 현대 자기계발의 원류로 평가받았다. 추종자를 자처한 자들이 쇼펜하우어·니체·키에르케고르·비트겐슈타인 이다.

셋은 『오라클-신중함의 기예에 대한 핸드북』『잠언집』『성격론』등을 통해 공통된 가르침을 남긴다. 한 마디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다. 이것이 곧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상대를 불평불만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틀 안에서 세 사람의 잠언을 소개하고, 엮은 이가 예시를 곁들이며 이해를 돕는다.

이런 식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드는 의문이 있다. 인간성 좋고 착한 선배는 왜 늘 물을 먹을까. 정의가 없는 세상 같다. 하지만 이 말을 음미해 보자. “정의란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나 않을까?”하는 의구심이다”(라 로슈푸코). 하여 그의 관점에서 정의로운 사람이란 ‘남의 이익을 자기 이익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니 회사에서 ‘인간성’이란 배려하고 아껴주는 훈훈한 인간성이 아닌, 이해관계의 균형을 맞출 줄 아는 능력이 된다.

흔히 쓰는 ‘정치적’이란 말도 그렇다. 뭔가 부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치적 인간은 우리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남에게 인정을 받아 나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나.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눌러주고 스쳐가는 찰나조차 칭찬을 놓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다른 이에 대해 좋게 말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신이 그를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에게 알리기 위해서, 둘째는 당사자 또한 자신에 대해 좋게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라 브뤼예르)

삶에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첫째 조건은 ‘포커 페이스’요 ‘침묵’이다. 재빨리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정의롭게 보이기 위해 한없이 투명해 질 필요는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능력을 보여주되 자기를 속속들이 알게 하지 않는다 (중략) 사람들은 그의 한계를 알 때보다는, 능력을 막연히 추측할 때 그를 더욱 존경하기 때문이다”(그라시안) “지혜로운 사람은 누군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도 내색하지 않으며 반대 의견이 나와도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는 말을 알아듣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자기 생각을 말한다.”(그라시안)

주제별로 엮인 책은 자신이 가장 당면한 문제-우정·연애·사회생활-를 찾아 읽기 좋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뻔할지라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삶이다. 상대와 공감하되 종속하지 않으며, 질투와 시기 대신 호의를 얻어내는 식이다. 그래서 책 말미 글귀 하나에 마지막 밑줄을 치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아쉬운 게 아주 조금 있는 사람이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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