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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외국어 뛰어난 '이화' 출신 … 사회주의 소신, 간첩활동은 '글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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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달 중순 한 책이 출간됐다. 이름하여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렸던 한 여성의 삶을 추적한 이 책은 일간지 서평란에 일제히 등장하며 주목받았다. 분단·전쟁·냉전이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투영하는 인물로, ‘마타하리’란 말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게 요지다.

 ‘한국판 마타하리’란 꼬리표를 단 여성은 현앨리스뿐만이 아니다. 김소산·김수임도 그러했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스파이 혐의로 총살된 네덜란드 여성이다. 매혹적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지만 실제 간첩이었는지는 논란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남북이 갈라진 이래 여러 여성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왔다. 본지는 이 여성들의 삶을 복기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을 통해 입장을 들어봤다.

현앨리스가 이혼한 남편 정준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정웰링턴을 안고 있다(1928년 촬영 추정). 1939년의 김수임. 아들 김원일씨가 2008년 공개한 사진이다. 큰 사진은 김소산을 다룬 영화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의 윤정희와 문오장. [돌베개 제공·중앙포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씨 가문 지인 “더 일찍 책이 나왔다면 …” =현앨리스는 1955년 북한이 부수상 박헌영에게 ‘미국의 간첩’이라며 사형을 언도할 때 이용당했다. 박헌영의 애인이자 미국과 박헌영을 연결한 스파이로 지목돼서다. 미국에서 태어난 현앨리스는 앞서 미군정 군속으로 한국에 왔지만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방됐고, 46세에 스스로 북한에 들어갔다. 박헌영 공판의 내용이 이후 한국에 알려지면서 ‘마타하리’ 프레임은 강화됐다.

 그러나 이화여대 정병준(사학) 교수에 따르면 현앨리스와 박헌영이 애인이었을 가능성은 낮다. 과거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던 기간이 짧고, 비슷한 시기에 각자 다른 이와 결혼했다.

 현앨리스는 1919년 3·1 운동이 성장시킨 진보주의자였다는 게 정 교수의 시각이다. 그의 부친 현순(1880~1968) 목사는 3·1 운동을 세계에 알렸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산파였다. 그러나 광복 후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며 미군정 지지 서명을 거부해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현앨리스와 동생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부친을 따라 하와이·상하이 등지를 떠돌았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접했다. 이런 삶은 현앨리스에게 미국·북한 스파이라는 극과 극의 정체성을 강제로 씌우는 빌미가 됐다.

 그의 가족은 평생 억울함 속에 살았다. 아들은 어머니 전력 때문에 미국·북한 어디에도 못 가고 체코에서 비밀경찰국 감시를 받다 63년 자살했다. 동생들도 미국에서 추방 위협을 겪었다. 동생 현데이비드(사망)의 지인 조이 김 USC(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전통도서관장은 “현데이비드는 사람을 굉장히 경계했고, 억울한 심정이 컸다”며 “살아 있을 때 (현앨리스를 다룬 책을) 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현앨리스의 조카 더그 현은 지난 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책이 나온 데 대해 “아주 행복하다. 매우 용감하고 열정적이었던 그녀의 이야기가 알려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날 더그 현의 누나인 폴라가 e메일을 보내왔다. “관심은 감사하지만 우리 현씨 가족은 아직 책을 못 읽어 언급할 수 없다. 이해해 달라”고 했다. 본지는 현앨리스의 손녀 타비타도 접촉하려 했으나 가족들은 “지금은 연결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김소산 사촌 원경 스님 “삶 다 왜곡” = 김소산은 73년 반공영화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의 여주인공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다음은 영화 줄거리. “고급요정 ‘국일관’의 기생 김소산(윤정희)은 남로당 행동대원 임충식(문오장)에게 금전적 유혹을 받아 국일관을 자주 찾는 우익 인사 정보를 빼낸다. 오제도 검사(최무룡)에게 발각돼 김소산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남로당 정보를 폭로한다.” 그해 대종상 우수반공영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김소산의 고종사촌 동생 원경 스님은 8일 본지 인터뷰에서 김소산의 삶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원경 스님은 박헌영의 아들이다.

 “다 왜곡됐다. 김소산(본명 김정진)은 박헌영의 조카이자 비선 자금책이었다. 이화여전 출신으로 이혼 후 승려가 되려다 유럽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서 어머니가 운영하던 대원각(지금의 길상사)을 물려받아 화류계의 별이 됐다. 영어도 잘하고 유럽에서 배운 춤(훌라 춤으로 알려짐)으로 유명했다. 만석꾼 집안이었고 오빠 김제술은 도쿄제대 출신으로 남로당 총책이었다. 김소산도 6·25전쟁 때 인민군복을 입은 것을 내가 봤다. 사회주의 소신이 있었던 거지 누가 꾀어 남로당을 위한 일을 했다고 볼 순 없다.”

 김소산이 간첩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김소산에 대한 기록은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한국 최초로 밍크코트를 걸치고 5캐럿 다이아 반지를 꼈다” “50년 크리스마스이브 날 마지막으로 자장면을 먹은 뒤 형장 이슬로 사라졌다” 등 설만 많다. 원경 스님은 “나도 6·25 개전 이후 보지 못해 정확한 사실은 모른다”면서 덧붙였다. “그동안 학자 두세 명이 관련 이야기를 물은 적은 있지만 그 삶을 제대로 연구한 이는 없었다. 김소산은 그저 바람처럼 역사에 휩쓸려 갔다.”

김수임 아들 “생모에 대한 관심 고마워”= 1950년 6월. 한 39세 여성이 한강 백사장에서 총살됐다. 언론은 ‘여간첩’이라고 했다.

  58년 뒤인 2008년 이를 완전히 뒤집는 보도가 나왔다. AP통신은 “비밀 해제된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 기록에 따르면 김수임 사건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김수임은 미군 존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면서 49년 ‘미군 철수계획’을 북측에 넘기고 애인 이강국을 월북시킨 혐의로 처형당했다.

 그러나 해제 기록에 따르면 베어드 대령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없었다. 이강국이 CIA 비밀조직에 고용됐다는 기록도 나왔다. 이강국이 CIA 요원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강국은 북한에서 ‘미국 간첩’이라며 처형당했다.

 미 기밀 문서는 김수임의 아들인 김원일 캘리포니아 라시에라대(신학) 교수의 노력으로 밝혀졌다. 김수임과 베어드 대령 사이에 난 아들이다. 한국인 부모에게 입양된 그는 70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후 진실 규명 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지금도 한국 백과사전에서 김수임은 “광복 후 미군정기에 활동한 간첩”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각종 영화·드라마·연극·소설은 그를 요부이거나 사랑에 목숨까지 바친 가엾은 여인 등으로 그려왔다.

 본지는 김 교수에게 입장을 물었다. 그러나 그는 첫 e메일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훗날 다시 물으시면 제 생각이 지금보다는 좀 더 정리돼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그때는 얘기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뒤 그는 다시 e메일을 보내왔다. “제 생모에 관한 따뜻한 관심에 감사하다는 말씀도 안 했네요.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삶 교차된 세 여성 = 현앨리스·김소산·김수임 세 여성의 인생은 묘하게 교차된다. 이화고등여학교나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인텔리 여성으로 모두 외국어에 뛰어났다. 미모였는지는 말이 엇갈리지만 개성이 있었다는 점은 일치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어떤 이의 여인’으로 불렸다.

 김소산·김수임은 오제도 검사에게 수사 받았고, ‘특별수사본부 시리즈’ 영화로 옮겨졌다. 현앨리스와 김수임은 서울 옥인동 19번지에 살았다. 조선총독부 명의의 적산가옥이다가 미군이 징발한 이래 미국에서 온 현앨리스와 베어드 대령이 집을 얻어준 김수임이 각자 살았다.

 ‘한국판 마타하리’ 세 명이 사회주의자와 연관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간첩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소산과 김수임의 판결문은 사라진 상태다. 현앨리스 관련 기록 일부는 북한에 있다. 이성숙 국립여성사전시관장(여성사 박사)은 “여성의 삶은 쉽게 폄하되고 성적인 팜므 파탈(악녀) 이미지로 대중에게 소비된 경우가 많았다”며 “기록과 팩트로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S BOX] ‘여명의 눈동자’는 말레이어로 ‘마타하리’

한국엔 여간첩을 다룬 영화·드라마가 많다. 분단과 전쟁, 냉전의 한국 현대사를 반영한다.

 한국영화 최초로 키스신이 나온 1954년 영화 ‘운명의 손’ 주인공이 여간첩이다. 91~92년 인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말레이어로 ‘새벽의 눈동자’를 뜻하는 ‘마타하리’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영화 ‘쉬리’(1998년), 드라마 ‘서울 1945’(2006년)에도 여간첩이 등장한다.

 이런 대중문화를 통해 대중에겐 ‘여간첩=미모의 팜므 파탈(악녀 또는 치명적 여성)’이란 등식이 퍼졌다. ‘한국판 마타하리’란 표현도 상투어가 됐다.

 이 때문에 마타하리는 계속 탄생했다. 2008년 탈북자 원정화씨가 군 장교와 사귀면서 군사기밀과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혐의로 5년형을 선고 받았다. 원씨는 스스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라고 말하지만 지인들은 “원씨 스스로 ‘제2의 김현희’가 되고 싶은 생각에 만들어낸 것 같다”고 한다.

 반면 87년에 살해된 수지 김(김옥분)은 명백히 여간첩으로 조작됐다. 남편 윤태식이 살해했으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여간첩 김씨가 남편과 위장결혼한 뒤 북으로 납치하려 했으나 실패, 북한 공작요원에게 살해됐다”고 했다. 진실은 13년이 흐른 뒤에야 밝혀졌고, 윤태식은 2003년 징역 15년6월형에 처해졌다.

 마타하리라 불린 이들은 외국에도 있다. 청나라 공주였으나 일본인에게 입양된 가와시마 요시코, 러시아의 안나 채프먼 등이다.

 마타하리는 진짜 간첩이었을까. 그의 모국 네덜란드에선 “프랑스가 조작한 희생양”이라고 보는 이가 있다. 그러나 독일의 기밀 문서에 따르면 마타하리는 암호명 ‘H-21’을 받았다. 다만 연합군 정보를 실제로 염탐했는지가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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