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1984년(18)유전 공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금요일오후, S병원에 근무하는 내과전문의 유진학박사는 바쁘던 환자진료를 끝내고 멀리 푸르른 낙산기슭을 바라본다.
그동안 유박사로부터 암이란 선고를 받고 별다른 대책 없이 죽어간 환자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사실 몇 년전까지만해도 세계적인 권위의 암학자라고 자부하는 유박사로서도 암에 걸린 환자에게 취할 수 있는 조치란 『당신은 암이오』하는 선고라든가, 혹은 수술이나 방사선요법등을 권장한다든가 하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유박사의 10년연구의 결정판인 신종항암제 「콘켄」이 개발되고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인터페론·림포카인·암괴사 인자등의 갖가지 면역조절제를 함유하고 있는 이 항암주사제는 아무리 말기 암환자라도 며칠간만 맞으면 거뜬히 회생할 수 있는 신약이다.
유전공학법에 의한 고효능 간염백신이 5년전부터 대량생산돼 신생아에게 의무적으로 접종을 시키기 때문에 간염도 이제 먼나라 얘기가 됐다.
토요일. 주5일근무로 이날은 휴일이다.
유박사는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마음먹고 청평유원지를 향해 차를 몬다.
별다른 식사준비도 없이 나왔기 때문에 유원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불고기 3인분을 시키니 쇠고기가 10근은 될 듯 싶게 푸짐하게 나온다. 쇠고기 값이 엄청나게 싸진 때문이다.
각종 성장호르몬제가 개발되어 소·돼지등 가축들에 주사만하면 보통의 2배정도나 되는 크기로 금방 자라기 때문에 수입고기는 오래전에 없어졌고 한우고기도 이렇게 헐 값인 것이다.
함께 나온 상치는 옆에 있는 채소공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불고기를 상치에 싸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난 유박사 가족은 채소공장을 견학했다. 컨베이어벨트위에 상치를 비롯한 여러가지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벨트위에는 세포융합으로 만들어진 토마토 (뿌리에는 감자, 줄기에는 토마토가 열리는 나무)와 무·배추도 눈에 뛴다. 견학을 마친 유박사가족은 근처 원두막에 가서 작은 수박만한 참외와 배를 실컷 먹고 집으로 돌아 왔다.
서재의 컴퓨터모니터에서 외출한 동안 외부로 부터의 연락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던 유박사는 갑자기 띵한 기분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스웨덴 한립원으로부터 온 텔리텍스는 『유진학박사를 94년도 노벨의학상수상자로 결정했음』이라는 내용이었다.
한 문 희 <과기연유전공학센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