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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엔 졌지만 외교성과 크다"|김문일감독이 말하는 곤명체류 11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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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홍콩=이민우특파원】『지고 이기는 일은 하나지만 우정은 변치 않는다. 앞으로 서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지도하자고 장대륙 감독이 마지막날 파티에서 굳게 손을 잡고 흔들땐 이념을 떠나 가슴이 뭉클해 지더군요』 건국후 처음 죽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한국남자테니스 대표팀의 김문일(38)감독은 11일동안 중공에 머무르면서 긴장으로 체중이 줄어 옷이 헐렁해 졌다고 말한다.
한국선수단이 지난2월25일 하오3시50분 중공민항기편으로 운남성 곤명공항에 도착, 태극기를 앞세우고 비행기를 내린 사실은 국내외에 큰 관심을 모았다.
『현지에 취재온 일본기자들은 우리의 태극기를 보고 협회기냐고 묻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어요. 너무 놀란 모양이예요. 그러나 일본기자들은 이번 경기를 정치적 방향으로 몰고가려고 했어요』
한국은 경기에선 졌지만 외교에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중공은 우리나라의 공식호칭인「코리아」(한국)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기까지 곡절도 많았다. 『이번 한-중공전을 양국 테니스협회간의 대결로 하려는 것이 중공측의 속셈이었어요. 중공은 마지막으로 한국협회대신 남한을 국명으로 인정하려고 했었죠. 그러나 우리가 완강히 버티고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결국 크게 후퇴하지 않을수 없었죠』 국호가 「한국」으로 결정되기까지 4∼5일간은 긴장된 순간이었다.
중공은 이번 한-중공전을 되도록 조용히 치를 요령인듯 했다. 모든 매스컴은 의식적으로 보도를 외면했고 대회의 선전포스터나 프로그램도 없었다. 대진추첨때도 데이비스컵관례에 의하면 주최국수상이 나오게 되어있는데도 조직위원장을 내세우려 했다. 그러나 김덕영 단장이 최소한 운남성장이나 곤명시장이 나올것을 강력히 요청하자 중공측은 상당히 당황했다는 얘기다.
결국 일본의「가와떼이」ITF이사가 추첨을 함으로써 문제는 해결됐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과는 달리 중공은 한국선수단에 의외로 친절을 다해 정성껏 대접했다.
『연습스케줄에도 전혀 차질이 없었어요. 음식은 특별히 고려한듯 종류가 다양하고 한국선수들의 입맛에 맞는것을 내놓았어요. 또 사진도 마음대로 찍게 하는등 아주 자유스럽게 행동할수 있게 했어요』
중공측은 선수단외에 지원인원이 33명이나 되는등 이번대회에 전력을 쏟은 인상이다. 임원중 명함을 내놓은 인사는 이미 농구로 한국에 잘 알려진 모작운 테니스협회 부회장뿐이었다.
미국 스프링필드 대학을 나온 71세의 모회장은 처음엔 영어를 쓰지 않다가 나중엔 사석에서 김덕영단장과 영어만으로 말을 주고 받았으며 출국때는 우리차에 동승, 배웅하기도 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고지적응의 실패로 지고 말았다.
『볼이 평지와는 달리 2m이상이나 더 나가요. 선수들은 2시간정도 버티는 것이 고작이어서 이후에는 기진맥진 했어요. 발이 이상하게 미끄러지고 숨이 턱에 차 탈진상태에 이르기도 했어요』
한라산꼭대기 높이에서 테니스를 한 셈이 됐다는 김감독의 말이다.
심판진은 모두 중공인으로 구성되었으나 공정해서 별 문제가 없었다. 한국선수들의 어필은 정중하게 받아들여졌고 중공선수들의 어필은 묵살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가 벌어진 곤명스포츠센터는 시내에서 30여km 떨어진 교외에 위치해 있었으며 한국의 태릉선수촌 같은 훈련장이었다.
잔디축구장만 12개가 있는 대규모 겨울철 훈련용 종합경기장인데 물론 선수 숙소도 마련되어 있다.
테니스코트는 이번 대회를 위해 야간조명 시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 중공테니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됐다.
중공팀 장대륙(50·천진대학 체육과 부교수)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중공에는 6세부터 탁구를 가르쳐 탁구인구는 1억이 넘는다.
이중 9세이상부터 테니스에 소질이 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있다. 중·고교의 6천∼7천명, 대학2천∼3천명, 일반2천명등 등록된 1만여명의 선수들이 주로 상해·북경등지에 많다. 국내대회는 데이비스컵 대회와 비슷한 경기방식인 전국 29개의 성이 출전하는 대회가 가장 크고 권위가 있다. 그러나 1-2군으로 나누어 1군대회에 10개성, 2군대회에 10개성이 참가한다.
특히 장감독은 『우리는 기술발전을 위해 우수선수들을 동구권으로 전지훈련을 많이 보낸다. 선수선발도 1m80cm 이상의 장신선수들을 우선적으로 뽑고있다』면서 『한국이나 중공은 비슷한 조건인데 앞으로 아시아테니스의 세계화를 위해 좋은 방안이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번 대회기간 동안 양팀 선수단이 모두 참가한 만찬이 3차례나 베풀어졌고 2차례의 관광을 가졌다. 마지막날인 5일 석림관광에는 양국선수단이 함께 버스에 동승, 한국선수단은 가지고 간 우리가요 테이프를 틀고 『아리랑』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또 한국주최의 만찬에서 한국선수들이 『서울의 찬가』를 부르면서 <서울에서 살렴니다>를 <곤명에서 살렴니다>로 바꿔부르자 중공선수와 임원들은 놀란 듯 가사를 물어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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