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전문 경영인-태평양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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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복직후인 45년 9월, 엘로디크림으로 화장품에 첫발을 내디딘지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태평양화학그룹은 화장품에 거의 외곬으로 매달려왔다.
태평양은 이제 11개 계열기업을 거느린 기업군으로 성장했지만 이중 화장품과 관계가 없는것은 태평양금속과 동방증권 정도다.
지난해 태평양그룹의 매출액은 총3천억원정도. 이중 절반이 넘는 1천6백억원을 태평양화학이 차지하고 있다.
손대고 있는 분야의 폭이나 규모로 볼때 그룹이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다소 작은 느낌이다.
태평양그룹에서 서성환회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약관22세에 화장품사업을 시작해 40년 가까이 직접 몸으로 일구고 가꿔온 만큼 적어도 화장품에 관한한 그이상의 전문경영인은 없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지난해 환갑을 넘긴 서회장은 요즘도 7시40분이면 회사에 나온다. 출근 즉시 서류결재를 하고 필요한 사항을 이것저것 묻고 지시하기 때문에 임원들도 8시전에는 출근하는 것이 상례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각 계열사의 경영을 매우 자주 챙기는 편이다.
매분기별로 모든 계열사 사장이 참석하는 사장단회의가 있고 또 월초마다 각사별로 돌아가며 경영회의를 열어 실적이나 경영계획을 일일이 챙긴다. 자수성가한 기업인답게 서회장은 늘 절약과 검소를 강조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을 경우에는 언제나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같이 줄을 서서 식사를 받아 누구하고나 함께 어울러 점심을 하는 서회장은 요즘도 밥을 남기는 사람이 있으면 몹시 언짢아한다.
사내에서는 회장이하 전직원이 같은 작업복을 입고 명찰을 다는것도 특이하다.
화장품에서 느끼는 화려함과 개성보다는 절약과 일체감이 매우 강조되는 분위기다.
창업이후 한우물만을 파온 태평양은 그만큼 단단한 기반을 쌓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조직의 활력성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태평양그룹의 인사체증이 무척 심한것도 70년대초 기업확장시 뽑아놓은 사람들이 자라는데 비해 이들을 소화시킬수 있는 곁가지를 별달리 키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태평양그룹에서 대표이사직을 맡고있는 사람은 서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10명이다.
이중 서왕배상사사장과 서강유장원산엄사장이 서회장과의 먼 인척일 뿐 뚜렷한 인맥은 없다.
이밖에 서회장의 둘째사위인 김의광씨가 장업전무로 경영에 참여하고있고 서회장의 장남 영배씨(30)는 지난해 입사, 공장생산부에서 과장급으로 근무하면서 경영수업을 쌓고있다., 모기업인 태평양화학과 통상의 사장을 겸직하고 있는 신동관씨(61)는 지난58년 서회장과 동향이라는 인연으로 몸을 담은 후 26년동안 주요포스트를 두루거쳐 81년부터 화학의 경영을 맡고있다.
이밖에 김만경장업사장(48)과 서강유 장원산업사장(57)도 58년에 입사,잔뼈가 굵어 각각 23년, 25년만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서왕배상사사장(51)은 61년 입사, 화학전무를 거쳐 77년부터 상사의 경영을 맡고있고 65년 공채1기로 들어온 이병화부사장(44)은 비교적 빨리 승진, 지난해 말부터 패션의 경영을 맡고있다.
이부사장은 지난해 동국대에서 한국경제입법연구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한 학구파 경영인이다.
그룹내 외부영입케이스사장은 5명으로 토박이사장과 균형을 이루고있다.
우종직 개발사장은 한일섬유를 자영하다 원기업 부사장을 거쳐 78년 개발부사장으로 들어왔다.
조권순제약사장(54)은 유한양행사장·유한킴벌리회장둥을 거친 제약업계의 원로경영인으로 서회장과 평소 맺은 교분으로 태평양화학에서 제약이 독립법인으로 갈라져 나오면서 사장으로 영입됐다.
황영규금속사장(50)은 산은부장출신으로 76년 화학상무로 입사, 81년부터 금속을 맡고있고 장석제동방증권사장(53)은 한신증권사장을 거쳐 82년 동방사장으로 영입됐다.
한정섭물산사장(48)은 한국화약상무·제일화재전무등을 거쳐 78년 화학 기획담당상무로 입사한 후 올부터는 화학부사장과 물산사장을 겸직하고 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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