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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포위츠의 과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상서로운가, 아니면 벌써 다툼을 벌여야 하는 경쟁적 관계인가? 「폴·울포위츠」미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1월말 아시아학회에서 행한 「미국과 한국의 상서로운 전망」(Auspicious prospects)이라는 제목의 연설은 그 제목과는 달리 한국의 국력을 과대평가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자못 위협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국의 경이적인 성공이 우리(미국)의 불안거리」라는 표현은 한국의 국력을 높게 평가한 과공으로 치부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위협적인 대목들은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당황해진다. 「한국은 경기규칙대로 경기를 하지않고 있다」 「한국의 경제정책에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불공평한 무역관습에 대응할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경제정책의 도덕성을 꾸짖고 제재조치를 가 할 것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한국의 경제가 과연 미국의 불안거리가 될만큼 성장한 것인가? GNP가 61년의 23억달러에서 7백억달러규모로, 개인당 소득이 20년사이 80달러에서 1천8백달러로 각각 상승한 것은 경이적인 성공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국력은 상대적이다. 82년을 기준, 미국의 GNP는 2조7천1백38억달러 (83년 잠정 3조3천9백억달러), 개인당 소득은 1만3천37달러이며 일본은 1조6백36억달러와 8천9백67달러다.
우리의 GNP는 미국의 39분의1, 일본의 15분의1에 불과하며 개인당 소득도 미국의 7·2분의1, 일본의 5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수치는 이 미국고위관리의 우리국력 평가가 얼마나 과장된 것인가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한국이 미국의 대규모제재를 받을 만큼 「불공평한 무역관습」을 상습적으로 자행해온 부도덕한 상인인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사들여 오는 물건값 보다 파는 물건값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 한햇동안 한국은 81억2천7백85만달러를 미국에 수출했고 62억7천4백43만1천달러어치를 미국에서 수입했다. 18억5천3백41만9천달러의 무역혹자를 보았다. 미국관리들은 아마 이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무역불균형은 미일간의 그것에 비교하면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는다. 83년에 일본의 대미수출액은 4백76억7천2백만달러, 수입은 2백46억5천9백만달러로 일본은 무려 2백30억1천3백만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에 비해 무려 13배나 많은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다.
미국은 겨우 18억달러규모의 무역역조를 바로 잡아야겠다며 이미 대한 수입규제조치라는 큰 칼을 휘두르고 있다. 모든 섬유제품과 자전거·타이어 및 튜브·신발류·특수강·일부철강제품에다 심지어 양송이통조림·법랑식기·철못까지 관세인상·반덤핑관세·총량쿼터등의 규제를 취했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한국의 컬러TV대미수출에 대해 반덤핑과세를 부과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이렇듯 한국에 대해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면서 레먼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시장을 개방하라고 고삐를 당기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경제체질은 어떤가?
지난 한햇동안 우리는 수입 2백48억달러, 수출 2백31억달러로 17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보았다.
특히 일본과는 28억달러라는 엄청난 무역역조를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 4백억달러의 외국빚(외채)을 짊어지고 있다.
여기에 안보를 위한 운명적인 경재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GNP 1%미만의 국방비롤 지출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GNP6%(3조4천5백억원·84회계연도) 의 무거운 국방비를 맡고 있다. 「울포위츠」차관보는 다행히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안보위협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방지는 한국 뿐 아니라 지역 내지 세계적안보를 위해서도 최고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시인한다. 그런 그가 경제문제에 관해서는 자제를 잃은 듯한 발언올 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한미간의 군사협력관계는 경제교류부문의 상호이해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첫번째 지적해야 할 것이 한국의 안보는 물론, 「미국의 국가 이익에 직결되어 있는」(「울포위츠」의 지적대로) 주한미군이 전액 미국돈으로만 유지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82년3월29일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한국이 82회계연도에 주한미군의 작전능력 향상을 위해 지원한 예산이 1억6천만달러(천전2백80억원)였다. 이 계획을 합동방위능력개선계획 (Combined Defence Improvement Plan) 이라고 부르는데 주한미군에 대한 이러한 재정지원이 70년대 중반부터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이미 시혜적차원이 아닌 호혜적차원으로 승화됐다.
두번째 한국군전력증강을 위한 두나라의 협력을 들 수 있다. 우리는 북한에 비해 2대1로 열세인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국군현대화계획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연간 16억달러(1조2천8백억원) 이상의 군사장비를 구입하고 있다 (미국방성차관보의회증언). 이 액수는 우연히도 우리의 대미무역흑자와 비슷한 규모다.
이돈은 우리의 연 국방예산의 3분의1에 해당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대한군사판매차관 (FMS) 은 연간 2억달러가 조금 넘을 뿐이다. 그것도 다른나라에 비해 이자 및 상환기간등 조건이 나쁘다.
또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상군원은 76년부터 완전히 중단됐다.
연간 16억달러 규모의 군사장비구입비란 우리의 경제규모로는 벅차지만 민족생존이란 안보의 급선무 때문에 한국민은 감수하는 입장이다.
시한세로 출발한 방위세가 제도화돼 군사장비 구입비와 비슷한 액수(84년 회계연도 징세목표 1조3천7백억원)를 매년 거두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살핀다면 한국의「경이적인 성공」이 미국의 불안이라고까지 극언하는 그 미국관리의 마음은 혹시 그릇된 대한관에서거나 근시적 국가이익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지난해 11월 「레이건」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미일언론들은 무역불균형시정을 위해 「나까소네」일본수상이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 어느 누구도 「울포위츠」차관보가 우리에게 거침 없이 사용한 언어들을 일본에 대해 그대로 쓴사람을 보지 못했다.
미국은 최근엔 지적소유권 (저작권등)까지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갓 젖뗀 아기에게 밥 먹으라고 윽박지르는 꼴이 된다면 두 나라의 이익을 모두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이점을 미국은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 외교당국은 벙어리들인가고 묻고 싶다. 몰이해의 말을 듣고도 한달이 넘도록 꿀먹은 벙어리 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말이다. 손주환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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