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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준상<미술평론가>|한국인·한국미술에 참다운 사랑의 빛-수화 김환기 10주기전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 예술가의 영광이 그 자신의몫으로만 돌아가지 않고 여러사람이 별러 나누어 가질수 있을때, 그의 영광은근대적 명성으로 빛나게 된다.
북극성은 그 하고 많은 별빛 가운데 하나의 빛이지만 그 빛줄기가 비단같은 길을 열어주고, 그 길로해서 미술이라는 이름의 나그네들을 유도해주는것이어서 그렇다.
수화김환기의 빛은 이처럼 빛난다.
인간이 그러했고 작품이 그러했다.
그에 영광은 한국인과 한국의 미술에 관해서 참다운 사랑의 빛이 무엇인지를 하나의 친선으로 맺어준다.
수화가 간지 10년….
그 10주기전 (국립현대미술관 1∼25일) 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문득 이런 소리가 교감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디에 있어도 해나 별빛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어디에 있어도 고귀한 진리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왜 명성을 마다하고 굴욕을 견디면서까지 굳이 고향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는겁니까….』
이것온「피렌체」가 조건부로 「단테」의 귀국을 허락했을때 이를 사절하는 대목이지만, 수화의 목소리로 그처럼 들려오더라는 것이다.
『거지 같은…』이란 말을 남기고 수화가 고향을 등진게 벌써 20년전의 일이 된다.
그리고 그의 심신은 미국땅에 감돌고 있다.
예술가의 고향은 어차피 세계도처이고 그래서 외로운게 예술가라는 개인이라고는 하지만, 수화는 자신의 명성만을 쟁취한다는 비정한 욕망만을 가지고 미국땅으로 건너간 한국인은 아니었다.
추사의 개성은 당시의 사회에선 방해요인으로 간주되었고, 제주도로 귀양보내진다는 인간 경험을 우리들도가지고 있지만, 개인의 명성은 또 다른 개인에 의해서 능가된다는것도 우리들은 또한 알고있다.
근대적 명성이란 그것을 공유한다는 귀납적 유발로서의 지표의 공감대를 뜻한다.
수화는 일찍부터 자신의 개성을 한국미술의 역사속으로 환원시킨다는 원숙을 자각하고 있었으며, 여기서부터 풀려나온게 50년대를 전후해서 그려진 선표의 실마리였다.
인간이 선을 가지고 사물의 유형을 판별한다는건 아직도 깊은 불가사의로 남아있지만, 한국미의 기본권리로 알려져있는 선미에 관해서 수화만큼 진지하게 그 실마리를 풀어보려던 화가는 귀하다.
그가 풀어낸 설화적 맥락으로서의 한국적 모티브들과 극도로 섬세했던 색면들은 60년대 중반부터 해체되기 시작했고, 태초로부터 구조의 자기제어로 보존되어온 점으로 환원되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요소가 무한대로 잠재하는 우주같은 공간속에서『어디서 무엇이 되어…』의 유영이 시작되며, 학처렴 긴 목을 굽혀 무한대의 정신노동을 감수하던 수화는 74년의 무더운 여름날 미국땅에서 넘어지고 만다.
그리고 저 하늘의 가장 큰 별빛의 하나로 저기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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