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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에게 인기는 독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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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쏟아지면서 영문학에서 그녀의 위상 흔들려

인기가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제인 오스틴이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 오스틴은 한때 영어권의 가장 위대한 여성 작가로 인정받으며 영문학의 중심에 우뚝 섰다. 하지만 할리우드와 볼리우드(인도 영화계)에서 그녀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쏟아져 나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높은 인기에 따른 대가라고 할까?

지난해 12월 오스틴 탄생 기념일을 맞아 한 작가(남성)가 쓴 기사를 예로 들어 보자. 그 작가는 오스틴의 시장성이 소설사에서 그녀의 위상을 “다시 생각하게(rethink)”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최근 내 문예창작 강의에서 한 학생은 오스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다른 학생들이 “감상적인 로맨틱 코미디” 취향으로 무시할까 두렵다고 말했다.

난 그동안 여러 글에서 오스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를 논했다. 그리고 질적으로 새롭고, 기술적으로 향상된 요즘의 미디어 문화에서 유명인사로서 오스틴의 지위는 저작이 아니라 브랜드화의 논리로 분석돼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하지만 난 최근 오스틴의 이미지 변화가 남녀를 구분하는 성별 문제(gender agenda)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1995년 오스틴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BBC 드라마 시리즈 ‘오만과 편견’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에서 미스터 다시 역을 맡은 콜린 퍼스에 대해 런던타임스는 “그의 바지가 너무 꽉 끼어서 시청자가 그 주머니 속에 잔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썼다. 이 기사가 여성들 사이에서 ‘다시 마니아(Darcymania)’ 돌풍을 일으켰고 그 후 오스틴은 갈수록 여성 취향의 작가로 밀려나고 있는 듯하다.

NSW HSC(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의 대입수능시험)를 준비하던 시절 나는 오스틴의 소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공부했다. 요즘 NSW HSC의 필독서 중 오스틴의 작품은 ‘오만과 편견’(1813)뿐이며 빅토리아주에서는 ‘설득’(1817)을 필독서로 채택했다.

내 대학 시절 영문학 수업에서는 남학생도 모두 오스틴의 작품을 읽어야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오스틴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인성이 부적절하다(personal inadequacy)’는 의심을 자초한다”는 리오넬 트릴링의 말에는 틀림없이 동의했을 것이다.

미국의 영문학자이자 평론가였던 트릴링은 오스틴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스틴이 “잘못된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종류의 주목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자신이 주최하는 오스틴 세미나에 몰려드는 진지한 청년들의 ‘감성적 기질(emotional tone)’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엔 최소한 남자들도 그런 세미나에 참석했다. 하지만 오늘날 오스틴에 관한 강의가 열리는 곳에 가 보면 진지한 청년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난 오스틴과 관련해 매우 특이한 강의를 진행한다. 로맨틱 코미디부터 웨비소드, 만화책(마블 코믹스에서도 오스틴 시리즈가 나왔다)까지 오스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살펴 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오스틴의 팬들이 다른 작품(예를 들면 영화 ‘스타트렉’)의 팬들과 구별되는 그들만의 특성에 관해 생각한다. 일례로 오스틴의 남성 팬들은 문화적으로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인식은 기존의 성별 규범을 한층 더 확고하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의 평가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평판이 그 당시 여성 독자 수와 반비례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사실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나올 때마다 (작품의 질과 상관 없이) 위상이 더 높아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스틴은 특정 종류의 문화적 위선과 주기적으로 충돌한다. 이런 위선은 고등학교 이상의 영문학 교육과정 문서에 심심찮게 나타난다. 남성 작가가 쓴 책은 남녀 학생 모두에게 적합하지만 여성 작가가 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이다.

제인 오스틴이 원래부터 이렇게 유명하진 않았다. 그녀가 영문학의 위대한 작가 대열에 포함된 건 1948년에 와서였다. 당시 문학평론가 F R 레비스는 저서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의 서두에서 “오스틴은 영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4명의 작가 중 1명”이라고 썼다.

레비스 이전에 오스틴의 작품에 대한 평가(평가의 주체가 모두 남성이었다)는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독자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혹평의 주 요인이 됐다. 일례로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오스틴의 인기는 그녀가 자신들의 물질적 목적에 꼭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출판업자들이 조장한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또 “책을 팔려는 욕심이 오스틴의 평판을 그녀가 받아 마땅한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한탄했다. 소설가 E M 포스터도 그녀를 혹평했다.

하지만 오스틴을 예찬한 남성도 많다. 예를 들면 러시아 출신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처럼 오스틴을 ‘중년에 발견한’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서는 마틴 에이미스(공식적으로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했다) 같은 남성 작가가 오스틴의 재능을 다른 ‘형편없는’ 여성 작가를 질타하는 채찍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스틴은 여권주의자가 아니었다. 여권주의가 탄생하기 이전 시대에 살았다. 그녀는 또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 시대의 사회악이 작품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서두를 읽다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글에 놀라게 된다.

오스틴은 문학의 역사에서 ‘큰 인기를 얻은 위대한 작가’라는 존재는 모순되게 보인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증명한다.

글=카밀라 넬슨 호주 노트르담 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부교수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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