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의 3가지 성공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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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서부 맨끝에 위치한 라꼬루냐. 대서양 연안의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에 세계 의류매출 1위 브랜드인 ‘자라(ZARA)’ 의 본사가 터를 잡고 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로 1시간20분을 날아 라꼬루냐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다시 차로 20분.

생산공장과 물류센터에 둘러싸여 흡사 낮은 성처럼 보이는 흰색 인디텍스 건물이 들어온다. 자라는 모기업인 인디텍스 그룹의 간판 브랜드다. 그룹에는 자라 외에도 풀앤베어·마시모두띠 등 7개 브랜드가 더 있다. 올해는 자라가 론칭(1975년)한지 꼭 40년이 되는 해다. 그 동안 수많은 SPA(패스트 패션)브랜드가 생겨났지만 자라는 여전히 업계 1위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자라의 지난해 매출은 115억9400만 유로(약 13조8085억원)로 전년보다 7% 이상 늘었다. 특히 유럽경제위기 여파속에서도 지난해 4분기 매출 성장률은 2년 만의 최고치였다.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인 자라가 오랜 세월 1위 자리를 고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 '패스트 패션'이 아니라 '정확한 패션'

자라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세계 88개국 6683개의 매장에 새로운 옷과 액세서리를 보낸다. 주문을 넣으면 유럽은 24시간 안에, 북·남미와 아시아는 늦어도 48시간 안에 요청한 제품이 도착한다. 하지만 인디텍스의 헤수스 에체바리아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는 “우리는 패스트 패션이 아니라 정확한(accurate) 패션”이라고 강조했다. “옷을 빠르게 만드는 건 쉽다. 중요한 건 빨리 만들어 배송하되 고객이 '원하는' 옷을 정확히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수준의 물류시스템과 온·오프라인 멀티채널, 빅데이터 분석기술도 ‘고객이 뭘 원하는지’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가운데 멀티채널은 고객과 더 가깝게 소통하게 해 고객의 니즈를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자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에체바리아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자라닷컴)을 100% 똑같이 운영하는 게 목표”라며 “고객들은 온라인에서 주문한 물건을 매장에서 찾고, 마음에 안들면 매장에서 얼마든지 교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RFID(무선 주파수 인식기)다. RFID칩은 옷이나 액세서리 등 해당 아이템의 색깔·사이즈·위치·판매량 등 모든 정보를 저장한다. 어떤 옷이 팔리면 바로 데이터를 재고 관리실로 보내 직원은 똑같은 옷을 바로 가져다 빠진 물품을 채워넣을 수 있다. 찾는 옷이 없을 경우엔 온라인 쇼핑몰이나 근처 다른 매장에 재고가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자라닷컴도 마찬가지다.

에체바리아는 “온라인 물류도 오프라인 물류와 비슷해야 잘 돌아간다”며 “온라인 판매를 분석해서 서울 매장 고객 요구를 다시 분석하고 물류센터에 정보를 보내 고객들이 정확히 원하는 물건을 서울로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때 벽 전면에 거대한 빔 프로젝트가 숫자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26만883명. 현재 자라닷컴에 접속한 사람 숫자다.

# '각각이면서 하나’인 거대한 시스템

자라 사무실로 들어서자 눈이 아플 만큼 광활한 공간이 펼쳐졌다. 이 곳엔 별도의 벽이나 칸막이가 없이 디자이너팀·견본제작팀·지역매니저팀·바이어팀·배송팀 등 말 그대로 모든 부서가 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었다. 전 세계 매장의 담당자와 연락해 고객이 원하는 옷이 뭔지 정보를 수집한 뒤 그걸 모아 디자이너한테 전해주면 디자이너는 견본을 만든다. 그러면 누군가 지금 막 뜬 견본을 받아 재봉질해 옷으로 만들어 옆에 있는 피팅룸에서 손 본 뒤 그 옆 전시장에 착착 걸어놓는 식이다. 서로 다른 이 모든 작업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 엄청난 효율과 시너지를 낸다.
만약 고객의 수요 분석이 잘못됐다면?

인디텍스의 라울 에스트라다 홍보 담당자는 “우리는 매장 현장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설사 최선의 결정이 아니었다해도 주문 빈도가 짧아서 금방 다른 것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패는 언제나 용인되고 오히려 실수를 한번쯤 바로잡으면 고치면 연봉이 오를지도 모른다”고 했다. 1년에 만들어지는 견본만 1만8000종류. 촬영을 위해 활동하는 모델만 1주일에 350명이 넘는다.

본사 사무실은 생산공장은 물론 물류센터와 모두 연결돼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다. 인디텍스는 라꼬루냐를 포함해 스페인 전역에 10개의 물류센터를 가지고 있다. 세계 각 매장별로 고객이 원하는 사항을 반영돼 만들어진 제품들은 각 브랜드별로 중앙 물류센터에 모아진 뒤 다시 각 매장별로 주문을 받아 전 세계로 보내진다.

에스트라데라는 “같은 도시라고 해도 금융지구에선 정장이 많이 팔리고 대학가에선 청바지나 티셔츠가 많이 팔리고, 주택가에선 편한 옷들이 많이 팔린다”며 “물류센터도 지역적인 특성에 맞춰 취급하는 옷 종류를 다르게 운영해 가장 빠른 배송이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자라의 사업모델은 제품 기획과 디자인·제작·유통이 모두 한번에 이뤄지는 ‘수직체계’다. 에스트라다는 “이런 수직화 모델의 지향점은 신속함(agility)와 단순성(simplicity)·정밀함(precision)·속도(speed)”라고 말했다.

# 실험실에서 시작되는 패션

자라 본사 지하엔 8개 브랜드별로 8개 매장이 펼쳐져 있다. 마네킹부터 조명· 인테리어·상품배치까지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물건을 사거나 파는 사람은 없다.

이 곳은 일명 ‘랩(실험실)’이라고 부르는 실험용 매장이다.

자라 관계자는 “우리 상품이 고객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정말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이 곳을 통해 수없이 시도와 모험을 한다”고 설명했다. 옷은 물론 인테리어나 조명을 1주일에 한번씩 바꾼다. 꾸준하게 팔리는 옷은 최장 3주까지 전시한다. 직원들은 매장 곳곳의 사진을 찍어 전 세계 담당자들과 공유하며 토론을 벌여 최상의 대안을 찾아 실제 매장에 도입한다.

홍보 담당인 에스트라다는 “흔히 패스트 패션은 비용절감이 최대 목적이고 기계가 모든 걸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자라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공장에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앉아 직접 다림질하고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고 있었다. 작업마다 약 100명의 직원이 일을 한다. 에체바리아 COO는 “우리도 여느 명품 브랜드처럼 아티즌(장인)들이 만드는 옷”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한국 등지에서 유니클로 등 다른 SPA브랜드들이 큰 인기를 얻고 실제로도 강력한 경쟁자고 생각한다”라며 “그렇지만 적어도 패션과 디자인 수준에 있어서는 감히 우리가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한국은 매장과 고객과의 관계가 그 어느 나라보다 친밀하고 패션수준도 매우 높아 자라에겐 매우 배울 게 많은 시장”이라며 “조만간 옷에 이름을 새겨주는 시그니쳐 서비스를 도입하고 새로운 브랜드도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꼬루냐=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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