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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담배 맛 몰랐다면 정약용을 만날 수 있었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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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32면

저자: 안대회 출판사: 문학동네 가격: 3만원

인류 최고의 기호품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위협. 바로 담배를 지칭하는 말이다. 애연가와 비흡연자의 팽팽한 입씨름은 담배가 전해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를 인문학으로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는 안대회 교수(54·성균관대 한문학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담배를 연구하는 자체로도 자칫 흡연을 미화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담바고 문화사』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담배를 주제로 한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17세기 초기 이래 한반도에 살던 절대 다수의 관심을 빼앗은 기호품의 제왕이자 경제의 블루오션이었기 때문이다. “담배는 조선 후반 300년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그는 말한다.

1492년 쿠바에 도착한 콜럼버스가 인디오에게 마른 잎사귀를 선물로 받은 이래, 담배는 불과 수십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전 세계 기호품 시장을 장악하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과의 국교가 재개된 1609년 이후 일본을 통해 부산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약이었다. 유몽인이 쓴 『담파귀설』에는 “가래와 곽란, 가슴과 배의 질병, 옴이나 종기 치료에 효과를 보았다”고 기록돼 있다. “부인이 그 약을 복용하면 임신하기가 어렵고, 임신한 부인은 낙태를 한다”고도 적혀있다.

담배는 순식간에 한반도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정조의 담배 사랑은 놀라울 정도다. 정조는 담배를 옹호함을 넘어 권장했다.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에 시 한 수를 짓도록 하는 시험도 쳤다.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담배는 전국에서 재배되며 중국으로 수출까지 됐다. 자연 명품도 등장했다. 평안도 성천·삼등·양덕 일대에서 재배된 것을 제일로 쳤다. “삼등의 명품 담배는 천하에 대적할 것이 없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이를 본딴 위조품도 나왔다. 이 평안도 ‘서초(西艸)’에 꿀을 묻혀 피우는 흡연법은 최고의 사치였다. “현재 북한에서 생산되는 홍초 담배는 꿀물을 첨가하는 옛 전통이 남아있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기호품은 명품을 낳는다. 담배가 처음 들어왔던 동래에서 만들어진 담뱃대가 가장 명성을 얻었다. 담뱃잎을 담는 대꼬바리를 은으로 만들거나 나전으로 장식한 것이 부유한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았다.

『춘향전』에도 “은수복 부산대 김해간죽 길게 맞추어 죽으로 세워놓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밖에 은으로 장식한 은입사 철제 담배합, 피우던 담뱃대를 잠시 내려놓을 때 사용하는 백동 휴연대, 수정과 옥으로 만든 대통에서는 당시 최고의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흡연 문화를 가장 고급스럽게 향유한 계층은 바로 기생이다. 일반 여성이나 천민과는 차별화된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로서, 기생은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기생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장죽을 물고 있거나 소지하고 있다. 길다란 장죽을 물고 있는 아름다운 기생과 담배를 주고 받는 장면은 남성들의 엉큼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깊이 읽기’ 코너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는 말은 어떻게 나왔는지, 골초를 뜻하는 ‘용고뚜리’라는 말의 어원은 어디인지를 각종 문헌 자료를 통해 소개하는 안 교수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는다. 300년 세월이 한달음에 읽힌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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