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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북핵 … 한국이 대화 이끌 타이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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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 존 케리 미 국무장관,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대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왼쪽부터)이 2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이란 핵 협상 타결 뒤 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AP=뉴시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첫발을 뗐다”고 말했다. 미국 등 주요 6개국과 이란이 12년여에 걸친 이란 핵 위기를 해소할 타협안을 만든 뒤였다.

양측이 합의한 포괄적 행동계획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는 이란 제재를 푸는 것이 골자다. 이란은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 개발에 이르지 못하도록 고농축우라늄(HEU) 분리를 하지 않고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을 하지 않기로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를 철저히 검증한 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제재를 풀게 된다. 최종 합의는 6월까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역사적인 합의”라며 “미국과 동맹, 세상이 더 안전해졌다”고 소리쳤다.

이란 핵 문제 협상이 타결된 날 워싱턴과 테헤란은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됐다. 같은 날 북한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임금 인상안대로 3월 봉급을 지급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3개국 중 이라크는 전쟁으로 인한 정권 교체로 굴복했고, 이란은 경제적 실익을 택하며 스스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이제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국가들 중 남은 건 대를 이어 가며 핵을 움켜쥐고 있는 북한뿐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에 한 것처럼 북한에 손을 내밀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 국무부는 최근에도 “이미 세 차례나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과 이란은 상황이 다르다”(마리 하프 부대변인)고 밝혔다.

문제는 꼬인 상황을 누군가는 풀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란 핵협상 타결을 환영하면서도 북핵 문제와 연관 짓는 데는 신중한 분위기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긍정적 영향을 받고 대화의 장으로 나왔으면 좋겠지만, 이란과 북한 핵협상은 목표와 핵 개발 상황 등에서 대단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란 핵협상 타결로 비확산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고조된 것을 계기로 한국이 북핵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에 반발하는 의회를 설득해야 해 북핵으로 향할 여력이 부족하다”며 “지금은 남북 관계를 복원시켜 남북 대화 틀 속에 미국과 북한을 끌어당기는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도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선 핵폐기론의 문제점은 이미 불거질 대로 불거졌다”며 “비핵화는 장기 목표로 두면서 다른 트랙을 통해 교류를 늘리며 북한 경제 시장화와 개방화를 꾀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 현안과 북·미 현안을 분리해 접근하겠다고 한 것과도 일치하는 것”이라며 “경제 활성화가 시급한 북한으로서도 핵 동결을 통해 협상력을 확보하고 경제적 실익을 챙길 여지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대화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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