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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옛날 노인들과 ‘노는 물’이 다른 그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60대 시니어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 ... 패션·외식·의료·육아시장 성장 이끌어

노인 세대가 다채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한 노년 여성이 네일아트를 즐기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기대수명 100세 시대, 이제 막 손자·손녀를 보기 시작한 60대가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예전과 같은 노년층이 아니다. ‘할머니, 어르신’으로 불리기보단, 그냥 ‘멋진 중년’로 불리길 원하며, 겉으로만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젊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기보단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시니어 집단이 중요한 고객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니어 시장이 중요하게 부상하는 현상은 다른 국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한국보다 고령화사회 혹은 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국가들을 보면, 시니어 소비자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신조어에서도 발견되는데, 가령 영어권 국가에서는 자신의 외모를 멋지게 치장하며, 실제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 멋진 노년여성을 일컬어 ‘올드 래스(Old Lass)’라 부른다. 일본에서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중장년층 여성들을 ‘미마녀((美魔女)‘라 부르며 신드롬을 낳고 있다.

시니어의 지갑을 열어라

한국 소비시장 역시 점차 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시니어 시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업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성장하는 만큼, 고객군도 함께 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니어 시장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구구조적인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경인지방통계청이 발표한 ‘2014 서울지역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6년이 되면 서울지역 65세 이상 인구(고령인구)가 유소년인구(0~14세)를 앞지를 것이라 한다. 규모 면에서 시니어가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매력적인 잠재고객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이들의 생활방식이나 의식도 과거의 ‘노인’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청년시절 미니스커트·장발·청바지·고고장·음악다방 등 새로운 문화를 마음껏 향유했던 사람들이다. 1970년~1980년 한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하면서 한국이 생산국가에서 소비국가로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전 세대보다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아 자의식이 강하고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데도 적극적이다. 다양한 경험으로 젊은 시간을 채워온 만큼, 시니어 시기를 보내는 방식도 예전의 노년층과는 질적으로 다르길 원한다.

변화한 시니어의 모습을 가장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역은 역시 ‘소비’와 관련된 부문이다. 몇 전 전만 해도 ‘시니어 시장’이란 영역에는 병약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수발이나 요양·의료 서비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시니어층은 새로운 시장의 생성을 예고한다. 비싼 제품의 가치를 알고 좋은 제품의 기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노년층들이 다채로운 소비의 향연을 만들어내고 있다.

달라진 시니어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노년층의 열망은 미용관련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요즘 센스 있는 자녀는 부모님 생신선물로 ‘팔자 필러’ 정기 이용권을 선물한다고 한다. 인체에 무해한 성분을 이용해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배출되는데다가, 주사 한방으로 1년 이상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동안 관리 비법으로 통한다. 패션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아웃도어 의류 시장을 견인하는 고객층은 다름 아닌 시니어라고 한다. 가벼운데다 화려한 색상을 가진 아웃도어 패션을 입으면,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효과가 있어 시니어층의 사랑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나 외식업계에서도 시니어들이 변화의 바람을 가져오고 있다. 평일 낮 유명 백화점에서 한가롭게 쇼핑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과거에 비해 시니어 층의 비중이 늘었다. 평일 낮, 브런치 레스토랑의 주요 고객도 할머니들이다. 카페에서 낮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문화로만 여겨지던 카페 문화나 브런치 문화가 이제는 젊은 감각을 가진 시니어 층에까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레스토랑과 카페 등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의 새로운 세트 메뉴를 개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며 달라진 시니어를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이’ 강조한 마케팅은 실패

육아시장도 시니어의 영향으로 변하고 있다. 손주에 대한 사랑을 제품의 구매로 표현하는 시니어가 늘면서, 육아시장에서 시니어가 차지하는 구매비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실제로 슈즈 브랜드 크록스에서 2014년 1월~4월 동안 키즈 관련 제품 판매를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고객의 구매율이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의 경우 유모차와 카시트 등 실제 육아에 필요한 제품을 구입한 시니어가 35%나 증가했다고 한다. 시니어가 육아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면서,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디럭스 유모차 브랜드인 ‘리안 스핀LX’는 유모차 광고모델로 중견탤런트 선우용녀를 기용했다. 실제로 유모차를 사서 선물하는 사람이 조부모라는 점을 간파한 전략이다.

이렇듯 소비시장에서 활약하는 시니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시니어 시장은 타깃고객으로 삼기 가장 어려운 집단이기도 하다. 가령, 이들은 신체적 약점 등을 고려한 시니어 제품을 마음 한 편으로는 원하면서도, 실제로 그 제품이 ‘시니어 전용 상품’으로 인지되는 순간 구매하길 꺼린다. 일본의 화장픔 브랜드 시세이도가 안티에이징 화장품에 ‘아름다운 50대가 늘어나면 일본이 변한다’라는 나이를 강조한 카피를 내건 이후 판매가 급감했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50세를 위한 제품’처럼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밝히기보다 ‘10살 젊어지는 제품’과 같이 간접적으로 타깃을 겨냥해야 한다는 의미다.

LG경제연구원 김재문 수석연구위원은 ‘시니어 마케팅의 출발점’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시니어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편리하게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며 “시니어 소비자의 마음을 먼저 얻는 기업이 마케팅 전쟁에서 한 발 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시니어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업이 곧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것임을 기억하자.

글=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 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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