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기술로 건조한 요트 해외시장에까지 순항 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광동FRP가 제작한 55피트급 요트.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제주 김녕항으로 출항했다. [차상은 기자]

지난달 27일 오전 8시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 요트계류장. 새하얀 요트 한 척이 출항 준비 중이었다. 목적지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항. 제주의 관광업체인 김녕요트투어가 광동FRP에 주문해 탄생한 요트다. 55피트급으로 길이 17m, 폭 8m인 이 요트에는 최대 50명이 탈 수 있다. 150마력 엔진 2기를 장착해 최고 12노트(시속 22㎞)로 운항한다. 선체는 섬유강화 플라스틱(FRP·Fiber reinforced plastics)이다. 내부의 침실 2개와 어린이방·화장실·샤워실 등은 고객 요청으로 중세 유럽풍으로 꾸며졌다.

 시민 박모(58)씨는 “겉모습을 보고 당연히 수입 요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국산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출항준비를 마친 한상천(30) 광동FRP 과장은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한 요트”라며 “수입 요트와 비교해도 손색 없다”고 말했다.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에 있는 광동FRP는 국내 대표적 요트 제조업체다. 직원 50명이 ‘VERIA’라는 브랜드의 요트를 만든다. 지금까지 55피트급 요트 6척을 건조했다. 제주 퍼시픽랜드에 3척, 부산 벡스코와 거제 대명리조트에 1척씩 납품했다. 2012년 5월에는 호주 씨윈드(SEAWIND) 그룹에 32피트급 쌍동형 요트 납품에도 성공했다. 해외 시장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 회사 한갑수(60) 대표는 조선소 기술자 출신. 조선소의 경영 위기로 회사를 그만둔 뒤 함께 퇴사한 동료 5명과 1994년 9월 광동FRP를 창업했다. 한 대표는 “당시 부산 앞바다의 요트는 모두 외국산이었다. 이전 회사에서의 선박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오기로 요트 건조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주문량이 적어 수익이 나지 않지만 앞으로 해양레저 산업이 활성화하면 회사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트 건조는 녹산공단 ‘요트 조선소’에서 이뤄진다. 대형 조선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어 크레인 등 장비가 많다. 주문을 받아 설계·건조가 모두 진행된다. 자체 기술력을 보유한 덕분이다. 고객 요청에 맞게 내장재를 설치하고 성능검사와 시운전을 마치면 인도한다. 최지훈(43) 연구소장은 “국내 요트업체는 영세하다”며 “다른 요트업체가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자체 기술력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자체 기술로 요트를 만드는 국내 업체는 광동FRP 등 5곳 정도. 고객들이 해외 요트를 선호해 국내 업체는 영세하고 침체돼 있다. 세월호 여파로 주문도 주춤해졌다. 하지만 세계 요트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요트 업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매년 평균 5조원 규모의 신규 건조가 이뤄진다. 전 세계 100피트급 대형 요트 6200여 척 가운데 23년 이상 된 요트가 1200여 척에 달해 대체 수요도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 대표는 “100피트급 대형요트 건조에 나설 것”이라며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요트가 세계 바다를 누빌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관세청의 세관감시정,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해양연구선 등 다양한 선박을 건조했다. 국내에서 운항중인 항만 도선선(Pilot)의 10척 중 9척은 이 회사가 만들었다.

글, 사진=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