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Talk Talk] 스펙 없는 잡스형 인턴을 뽑는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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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스티브 잡스는 저 세상에서도 바쁠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서요. 한국에서도 참 줄기차게 부르죠. ‘잡스형 인재를 찾는다’는 말은 이제 기업들의 단골 채용 문구입니다.

 지난주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런 채용이 화제였습니다. ‘스펙이 뛰어나지 않은 지원자도 채용될 수 있다’는 현대카드의 인턴모집 공고인데요. 이게 새삼 관심을 끈 건 ‘스펙이 뛰어나지 않은’에 대한 정의 때문이었습니다.

 현대카드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 제도는 ‘스페셜 트랙’입니다. 인턴 정원 70명의 10% 정도를 ‘일반적 채용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자기만의 색깔과 특장점을 지닌 지원자를 뽑는 제도’라네요. 그러면서 이런 사람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기고한 적 있지만 금융 스펙이 없는 물리학도’, ‘세계적 광고제 입상 경력이 있어도 스펙이 좋지 않아 취업 고배를 마셨던 이’.

 지난해 스페셜트랙으로 뽑힌 인턴은 이런 분들이었더군요. 해외 투자자문사 인턴 경험이 있는 포스텍 학생, 국내 유명 공모전에서 10여 차례 수상한 이화여대 학생’ 등. 스펙 없는 잡스형 인재’는 정녕 이런 뜻이었단 말입니까.

 채용공고를 읽을수록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난 덕에 이 시대에 취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요.

 ‘내 밑에서 혁신할 잡스’는 ‘평범한 내게 반한 재벌2세’ 같은 판타지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잡스는 남의 밑에서 일한 적이 거의 없죠. 20세 때 애플을 창업했으니까요. 잡스가 상사의 결재를 단계마다 받았다면 아이폰이 출시될 수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혁신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살아남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죠.

 잡스는 인턴 경험이 있었습니다. 기계에 관심 많았던 그는 HP 부품 한 가지를 구하다 안 되자 팔로알토 지역 전화번호부를 뒤져 당시 HP 사장인 빌 휴렛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휴렛은 잡스와 20분간 친절히 대화를 나눴고, HP 여름 인턴 기회를 줬습니다. 그때 잡스의 나이 13세였습니다.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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