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된 혐오시설

중앙일보

입력

소·돼지 분뇨와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 그걸 서로 받아들이겠다고 여섯 개 마을이 나섰다. ‘내 마을엔 절대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가 아니라 ‘제발 만들어 달라’는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다. 충북 음성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음성군은 가축을 많이 키운다. 분뇨 역시 많이 나왔지만 처리시설이 없어 인천까지 실어다 버렸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 들어 자체 처리시설을 추진했다. 2009년 후보지를 정했으나 주민 반발로 좌절됐다.

그 사업을 올 들어 다시 추진했다. 이필용 음성군수는 직원들에게 “동네 사람들이 귀가 번쩍 뜨일 보상책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했다. 마을발전기금 20억원과 분뇨수집운반사업권 등을 내걸었다. 음성군 문근식 환경위생과장은 “처리할 분뇨를 거둬들이면서 수수료를 받아 마을에 항구적으로 수입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전기와 난방이 공짜”라는 당근을 추가 제시했다. 분뇨처리장에서 나오는 가스를 활용해 일종의 열병합발전소를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전기와 난방열(뜨거운 수증기)을 거저 주겠다는 것이었다. 후보지 신청을 한 감곡면 원당2리 김익환(50) 이장은 “3300㎥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데 겨울이면 난방비만 월 160만원이 든다”며 “이걸 공짜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대단히 큰 혜택”이라고 말했다.

몇몇 마을에서 유치 움직임이 일었다. 마을 이장 등이 돌아다니며 “똥 공장”이라고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했다. 음성읍 석인2리 김호식(60) 이장은 “발전소가 들어서고 전기를 공짜로 주는 데다 에어 커튼 같은 특수 장비를 설치해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했다.

결국 감곡면 원당2리·상평1리·단평1리, 음성읍 석인2리, 금왕읍 각회1리·각회2리 6개 마을이 신청서를 냈다. 원당2리와 상평1리는 “당첨 확률을 높이겠다”며 후보지 두 곳을 내밀었다.

이들은 신청서에 자신들이 시설을 유치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67세 이장이 제일 젊다. 노인 많은 마을에 로또를 달라’(각회2리). ‘땅값이 싸 토지보상비가 제일 적게 든다’(원당2리). ‘주민이 100% 찬성했다. 민원이 발생할 일이 없다’(단평 1리).

음성군은 서류심사와 현장조사를 거쳐 오는 15일께 후보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분뇨처리시설은 면적 15000㎡ 330억원을 들여 내년 상반기 착공, 2017년 말 준공 예정이다.

음성=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