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 막판 치열한 탐색전 … 베이징 달려간 미 재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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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재무장관을 베이징으로 보내고, 일본은 관련 당국자들의 발언이 엇갈리는 등 막판까지 치열한 신경전과 탐색전이 이어졌다. 31일로 설정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회원국 신청 마감 직전의 모습이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미국을 향해 국제 금융질서의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30일 가입신청서류를 제출한 이집트와 핀란드에 이어 31일에는 키르기스스탄·대만·스웨덴이 가세했다. 중국 언론들은 “막 발차하려는 중국발 ‘오리엔트 특급’(동방쾌차)에 올라탔다”고 표현했다. 중국 외교부의 화춘잉 대변인은 31일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참여는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모두 47개국이 AIIB 창립 멤버가 됐다. 31일 자정을 기준으로 집계하면 더 늘어날 수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비역내국가인 유럽의 대거 참여는 물론, 아프리카(이집트) 및 남미까지 망라돼 있다. 서방 주요 7개국(G7) 가운데 4개국이 참여를 선언했고 미국, 일본, 캐나다만 남았다. 당초 친중국 성향의 아시아 국가들에 제한될 것이라던 예상을 크게 웃도는 결과다.

 미국도 마냥 반대만 하고 있을 순 없는 상황이 됐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이 30일부터 이틀간 베이징을 방문한 것은 이런 기류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루 장관은 왕양(汪洋) 부총리와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잇달아 만났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루 장관은 리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주도하는 것을 지지하고 국제경제 업무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하는 데 대해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아시아개발은행(ADB) 및 세계은행 등 기존 기구를 통해 미·중이 협력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중국은 이를 완곡한 가입 거절로 해석했다. 베이징 상보는 “AIIB를 통한 직접 협력이 아니라 기존 조직을 통한 협력을 강조한 것은 미국은 AIIB에선 빠지겠다는 의미”라고 보도했다. 대신 루 장관이 베이징을 찾은 것은 AIIB의 운영 방식이 어떻게 정해질지를 파악하는 탐색적 방문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중국은 보고 있다. 장위옌(張宇燕)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장은 “우방국가들의 가입에 대해 고립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AIIB의 운영 원칙, 특히 이사회에서의 의사결정 구조 등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행동 방향을 정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AIIB 창립 과정에서 우위를 확보한 기세를 몰아 국제금융질서 재편을 주장하고 나왔다. 리 총리가 루 장관에게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신흥국의 발언권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 그 예다. 리 총리는 또 IMF 특별인출권(SDR)을 구성하는 통화바스켓에 위안화가 편입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일본은 창립회원국으로서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이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음을 노출시켰다. 기테라 마사토(木寺昌人) 중국주재 일본대사는 31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재계는 다소 늦게 AIIB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일본이 몇 개월 내 AIIB에 가입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식적인 입장 표명에 나선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재무상은 이날 “AIIB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이 일본 참여의 전제가 된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해석하면, AIIB 공식 출범에 앞서 구체적으로 운영 방안이 확정되는 단계에서 중국의 독주를 막는 방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일본도 참가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발언이었다.

 중국은 AIIB 회원국 가입절차를 31일까지 마무리한 뒤 참가국들과 함께 지분율 배정 등 각종 추가절차 논의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예정 창립회원국들은 31일 카자흐스탄에서 회의를 갖고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투표권 배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북한도 AIIB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중국에 밝혀왔으나 금융 시스템 미비 등의 이유를 들어 중국이 이를 사양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 방송(RFA)가 보도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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