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NIE] 인류의 진화 … 인간이 원숭이보다 우월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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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과학계의 오랜 숙원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저널 ‘네이처’는 올해 10대 과학 이슈 중 하나로 ‘40만 년 전 고인류 화석의 DNA 분석’을 꼽았다. 과학계에선 지금의 인류와 원숭이가 대략 500만~700만 년 전쯤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 진화했다고 추정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대략 4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인류는 이때 출현한 종의 후손이다. 40만 년 전 고인류 화석의 DNA 분석은 장구한 인류 진화의 중간 고리를 풀어줄 중요한 연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교과서와 언론, 각종 연구자료를 통해 진화론과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아봤다.

다윈의 진화론

19세기까지 사람들은 창조론을 믿었다. 산 꼭대기에서 발견되는 조개 화석은 노아의 홍수를 증명하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1581~1656)는 성서에 기초해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에 세상이 창조됐다고 계산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19세기까지도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했다.

 다윈이 체계화한 진화론은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수백 종의 동식물을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자연선택에 의한 생존 경쟁이 진화를 이끈다’고 논증했다. 자연선택은 다윈의 진화론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여기서 선택이란 신 또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선택이 아닌 자연 환경에 의해 선택된다는 뜻이다. 한 집단 내엔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이 살고 있는데, 이 중 환경이 변했을 때 변화된 환경에 유리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금성출판사 『과학 교과서』는 “선택된 개체는 … 더 많은 자손을 낳아 자신의 유리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더 많이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자연선택이 반복되면 …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집단이 유리한 형질을 가지는 쪽으로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두 발로 걷는 350만 년 전 ‘루시’ 발견

다윈이 진화론을 체계화하면서 인류의 기원을 좇는 연구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됐다.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는 1970년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74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지역에서 320만 년 전 고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성인 여성 ‘루시’다. 인류 기원을 300만 년 전 이전으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발견이었다. ‘루시’의 골반뼈와 대퇴부뼈로부터 그가 두 발로 서서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직립보행 여부다. 직립보행은 500만~700만 년 전 인류와 원숭이의 공통조상에서 인류로 진화한 그룹이 나무 위 삶을 떠나 초원에서의 삶으로 옮겨갔다는 결정적 증거다. 두 발로 곧추선 자세는 많은 이득을 준다. 주변을 더 잘 살펴볼 수 있고, 포식동물로부터의 위험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음식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천재교육 『생명과학 Ⅱ 교과서』는 “인류의 조상이 유인원과 다른 진화의 경로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은 직립보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 직립보행으로 시야가 넓어지면서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증가하고, 뇌가 발달했다. 그 결과 인간은 언어와 문화적인 행동이 가능해졌으며, 이것은 다른 영장류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이다”라고 설명한다.

인류와 원숭이의 공통 조상 ‘이다’

금성출판사 『과학 교과서』는 인류와 원숭이의 공통 조상으로 여겨지는 이다(IDA)라는 생물을 소개한다. 교과서는 “이다(IDA)라는 별명의 동물은 47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살았으며, 지금의 여우원숭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다는 사람과 유인원의 먼 조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고 썼다.

 과학계는 500만~700만 년 전에 인류가 나무 위에서 초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배경에 대해 기후의 변화를 중요한 계기로 바라본다. 빙하기설이다. 지구의 기온이 급격하게 하강하면서 아프리카 열대우림이 줄어들었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인류와 원숭이의 공통 조상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그룹은 나무 위의 삶을 계속 이어갔고, 한 그룹은 먹이를 찾아 초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인류로의 첫발이다.

 ‘루시’의 정식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다. 이들은 약 290만 년 전부터 400만 년 전 아프리카 곳곳에 흩어져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파렌시스 외에도 다양한 종이 번성했다. 하지만 이들은 인류의 직계 조상은 아니다. 직립보행을 했지만 뇌의 용적은 현생 인류의 4분의 1에 불과한 400mL에 불과했고, 언어 능력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다.

 인류의 정식 조상으로 분류되는 종 앞엔 사람이란 뜻의 호모(Homo)가 붙는다. 최초의 조상은 호모 하빌리스로 분류되는 종이다. 호모 하빌리스는 ‘손재주 있는 인간’이란 뜻으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종이다. 약 170만 년 전에서 25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호모 에렉투스(약 20만~18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약 3만~25만 년 전), 그리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까지 인류는 멸종과 진화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아프리카를 넘어 각 대륙으로의 이동은 호모 에렉투스에서부터 시작됐다.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인류의 뇌 용적은 1000mL에 달했고, 다양한 석기 도구와 무기를 사용했으며 최초로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 먹었다. 천재교육 『생명과학 Ⅱ 교과서』는 “호모 에렉투스는 처음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최초의 인류로 생각되고 있다 … 아시아와 유럽까지 이동해 간 기록이 있다”고 적고 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도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름은 크로마뇽인이다. 최초의 출현 시기는 약 4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계에선 약 6만 년 전을 전후해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가 이뤄졌고, 3만5000년 전 유럽에 정착했다고 본다. 이들은 1만2000년~2만5000년 전 사이에 빙하기 때문에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지금의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 베링해를 건너 북아메리카로 정착지를 넓혀갔다.

진화는 우열이 아닌 종의 다양화

다윈의 진화론은 때론 비정한 경쟁 논리를 정당화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한 사례가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이다. 사회적 다윈주의에서 차별은 정당화된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적자생존 논리로 탈바꿈됐고,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가 정당화됐다. 우생학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이 그 예다. 우생학은 미국에서 70년대까지 폭넓게 수용됐었다.

 하지만 정작 다윈은 종의 진화를 진보와 발전으로 보는 시각을 배격했다. 다윈은 진화를 한 종이 다른 종을 넘어서 올라서는 사다리가 아닌 생명의 나무 개념으로 바라봤다.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는 위아래나 옆을 구분하지 않고 사방으로 뻗는다. 다윈에게 진화는 종의 우열이 아닌 종의 다양화를 의미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방향성이나 종의 우열 개념이 전혀 없다 … 다윈의 위대한 점은 인간이 특별한 생명체가 아니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유한 논리, 바로 진화에 의해 지구상에 출현한 생물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편적 인식 전환의 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중앙선데이 2012년 6월 24일 ‘왜 시조새를 못살게 구나’) 이런 다윈의 입장은 그의 정치적 성향에도 반영됐다. 그는 죽을 때까지 흑인 노예제도를 반대했다.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자문=서울 동북고 강현식 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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