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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차 갑자기 끼어들자 알아서 감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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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현대차 연구원이 두 손을 들고 양발은 페달에서 뗀 채 제네시스 자율주행차에 탑승했다(사진 왼쪽). 제네시스 차량이 운전자 조작 없이도 앞쪽으로 끼어드는 차량과 스스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운전자의 심박수가 갑작스레 정상 범위(분당 60~100회)를 넘어 분당 180회까지 올라간다. 스마트워치로 운전자의 건강 이상을 재빨리 알아챈 자동차는 스스로 운행을 멈추고 운전대를 돌려 갓길로 향한다. 갓길에 선 차량은 주위에 있는 구급차를 차량 간 통신(V2V)으로 호출한 다음 운전자를 병원으로 후송한다.

 현대자동차가 앞으로 5년 내 현실화할 자율주행차(무인차)의 실제 주행 모습이다. 아우디·벤츠 같은 완성차 메이커뿐만 아니라 애플·구글 등 정보기술(IT) 기업까지 자율주행차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현대차가 ‘2020년 양산’을 목표로 내건 자율주행차 프로젝트의 비전은 ‘가장 안전한 차’다. 컴퓨터가 운전자를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가장 안전한 상태에서 운전할 수 있도록 돕는 인공지능(AI)의 형태다.

 현대차는 31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특별 서킷에서 ‘2020년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혼잡구간 주행 시스템,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 등 각종 자율주행 기술을 공개했다. 현대차가 자율주행 기술을 대중에 공개한 건 2010년 투싼 자율주행차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현대차가 자신들의 ‘카드’를 꺼내지 않은 사이 무인차 산업에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까지 도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현대차로서도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이날 현대차가 처음 선보인 자율주행 기술은 ‘혼잡구간 주행지원 시스템(Traffic Jam Assist·TJA)’이다. TJA 시스템이 설치된 제네시스 차량은 운전자가 팔짱을 끼고 있어도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스스로 횡단보도와 택시 승강장에서 멈췄다. 다른 차가 끼어들어도 속도를 늦춰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앞차를 따라 부드럽게 유턴 뒤 S자 도로 주행까지 알아서 척척 해냈다. 제네시스에 장착된 레이더와 카메라가 주변 상황을 인식하면 전자제어시스템(ECU)이 분석해 조향·제동장치를 작동한 덕분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옆차가 황급히 끼어들어도 자동차가 알아서 안전거리 확보까지 가능한 기술을 개발한 건 현대차가 세계 최초”라면서 “자율주행차를 개발 중인 폴크스바겐·벤츠 같은 경쟁사에도 없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메이커들이 개발한 TJA의 경우 시속 20~40㎞로 막히는 도로에서 차량이 스스로 속도를 낮추는 데 기능이 국한돼 있다.

 실제로 도로를 달릴 현대차의 자율주행 차량도 올해를 기점으로 속속 등장한다. 현대차는 올 연말 출시할 최고급 세단 ‘에쿠스’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에 ‘고속도로 주행 지원 시스템(HDA)’을 탑재하기로 했다. 차량 속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크루즈 컨트롤’, 차선유지 제어 시스템, 내비게이션을 한데 묶은 기술로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고속도로에서 자율 주행이 가능하다.

 현대차가 밝힌 자율주행차 비전은 구글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구글이 브레이크·운전대가 없는 ‘완전한 무인차’를 꿈꾸는 데 반해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는 사람이 안전하게 운전을 즐길 수 있게 돕는 각종 자율주행 기술을 ‘자동차의 미래’로 꼽은 까닭이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야구에서 불규칙 바운드가 생기면 제아무리 훌륭한 유격수라도 실책을 범한다”면서 “사람이 갑작스레 뛰쳐나오는 불규칙적 상황까지 컴퓨터가 제어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설명했다.

 또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포드 같은 완성차 메이커와도 현대차는 자율주행차 분야 차별화에 나섰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끈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자율주행 콘셉트카 ‘F015’를 운전자 없이 시내를 누비도록 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김대성 현대차 전자제어개발실장(이사)은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자율주행 기술을 양산차에 접목해 소비자들에게 실제로 전달하는 게 현대차의 목표”라며 “자율주행 기술 자체로는 이미 벤츠·아우디 등과 동등한 기술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말했다.

송도(인천)=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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