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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대 기자의 퇴근후에] 상처와 치유의 연극 '슬픈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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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립극단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중년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민주화 투쟁을 하다 일본으로 도피한 아버지를 모진 고문 때문에 ‘간첩’으로 만든 아들 백윤석(강신일 분). 그는 이로 인해 평생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에 싸여 살아왔다. 그러다 30여 년 만에 첫사랑 박혜숙을 만난다.

박혜숙 역은 연극 ‘슬픈연극’에서도 강신일과 호흡을 맞췄던 남기애, 영화 ‘오로라 공주’ ‘집으로 가는 길’ 등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다 1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방은진이 더블캐스팅 됐다.

여기에 백윤석의 친구이자 극의 감초 역할을 하는 김주삼 역은 최용민이 맡았다. 관록 있는 중년 배우들 간의 연기 호흡은 극의 안정감을 줬다. 이 중에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장면은 파킨슨병에 걸린 백윤석의 처, 김순임(이정은 분)이 혜숙을 찾아가 대면할 때였다.

병색이 짙은 순임의 모습을 배우 이정은은 떨리는 목소리와 불편한 몸짓으로 표현해 냈다. 그의 연기가 조금이라도 어색했다면 관객은 극에 몰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내뱉은 남편과의 인생사에 ‘진심’이 묻어 나왔고,이것이 관객을 울렸다.

극의 마지막 순임을 위해 들려주는 배우들의 연주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배우들이 직접 첼로·색소폰·하모니카 등을 연주했다. 상처 입은 중년, 자신들을 위해 들려주는 치유의 노래인 듯 싶었다.

사진 국립극단

극 중간 백윤석과 박혜숙이 사랑을 나눌 때, 첼로의 느린 박자에 맞춰 서로 대화 하는 장면은 실험적인 장치였다.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 싶었다.

기자는 이 작품을 본 이후부터 가수 나미의 노래 ‘슬픈인연’을 흥얼거린다. 이 노래가 명곡이란 걸 이 연극을 보고 새삼 느꼈다. 4월 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88-5966.

강남통신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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