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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백일장] 3월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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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시름마저 꽃이 된 수선집
긍정적 시선·감각 돋보여

이달의 심사평

본격적인 시조 창작의 계절이 시작되었다는 듯 이번 달에는 응모 편수가 평소보다 많았다. 응모 편수가 많으면 좋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새로운 화법, 남다른 상상력, 형식 운영의 신선함 등 뭔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시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가슴이 설렌다.

 시조는 아무래도 종장의 처리 수준에 따라 우열이 가려질 수밖에 없다. 초장과 중장에서 펼쳐온 시상을 종장에서 나름대로 전환의 미학을 창출해야 맛이 깊어지고 감동의 파장도 커진다. 그런데 많은 작품들은 시조 종장을 자유시처럼 펼쳐 놓아 시조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고 독자의 눈길도 끌지 못한다.

 3월의 장원은 정옥자의 ‘사랑을 수선하다’에 돌아갔다. 이 작품은 ‘먼지’가 ‘밥’인 수선집의 독특한 분위기와 사랑의 의미를 잘 살린 작품이다. 제목만 보면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둘째 수와 셋째 수의 종장이 거느린 질감으로 전체적으로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면서 수선의 대상이 왜 사랑인지를 수긍하게 한다. ‘밥’이던 ‘먼지’가 어느새 ‘노래’가 되고 ‘피’가 되며 시름마저도 꽃으로 피어 ‘창 없는 방’에 ‘창이 되’어 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과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차상은 김진숙의 ‘양파’에 돌아갔다. 장원 작품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을 정도로 둘째 수의 종장 ‘오히려/ 당신이 왜 울어/ 원망 한마디 못하게’는 잘 뽑아 올린 명구다. 자유자재의 화법으로 술술 읽히는 맛이 일품이다.

 차하 작품은 이수자의 ‘저녁 벌교’다. 벌교의 꼬막이 소재인데, 뻘배에 한 짐 가득 싣고 돌아가는 저녁이면 경계에 나섰던 방게도 안심하고 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종장에서 생의 아릿한 안도감을 맛보게 한다.

 이들 작품 외에도 시조로서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선명한 이미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난해의 늪에 빠진 작품들이었다. 자연 감동도 떨어졌다. 다음 달에는 더욱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권갑하·박권숙(대표집필 권갑하)

김천 지례면 어느 초등학교 교사였는지 모른다. 80년대는 새로운 연대이길 기다렸지만 더 큰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청년시인은 몇 편의 시를 쓰고 신춘문예를 준비했다. 당선 소식을 기다리는 며칠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삽짝 밖에 집배원이 다녀가는 자전거 소리가 나면 문을 열어젖혔으리라.

 전보는 지난 시대의 것이다. 행사 축전이야 아직도 존재하지만 요즘 당선통보나 군문에 보내는 소식은 전보를 띄우지 않는다. 예전엔 전보가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이 한 편 단수로 훌륭한 시조창작 강의를 들은 셈이다. 어떤 감정도 싣지 않았지만 첫눈 내리는 날 불현듯 던져진 전보를 받는 기쁨과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나지 않는가. 시조는 짧은 시다. “절제하라. 괜히 설명하지 말고, 섣부른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짐짓 보여준다. 10여 권의 시조집을 펴낸 시인이기에 한 수를 뽑는 일이 난망했지만 고심 끝에 이 작품을 골라보았다.

이달균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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