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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요율'로 서비스 경쟁 유도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위원회 공동위원장
한국소비생활연구원 원장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는 지난 2일 부동산 중개보수 조례 개정안을 심사 보류했다. 하지만 경기도의회는 지난 19일 본회의를 열고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낮춘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정부 개편안의 가장 큰 수혜 지역으로 여겨졌던 서울에서 조례 개정안 처리가 파행을 겪으면서 이사철을 맞은 소비자들만 조례 개정의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조례 개정이 이루어졌다면 오는 4월 3억 원 아파트 전세거래를 하는 소비자는 중개수수료를 최대 120만원 절약할 수 있었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마련한 조례개정안은 정부의 권고안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이 개편안은 매매 6억원 이상 9억원 미만, 임대차 3억원 이상 6억원 미만 구간의 주택에 대해 중개보수 상한요율을 기존 0.9%, 0.8%에서 각각 0.5%, 0.4%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매매보다 임대차의 중개수수료가 높았던 왜곡현상을 바로잡고, 부동산 중개보수 체계가 처음 마련된 2000년 당시 1% 내외에 불과했던 고가 주택구간을 현 부동산 시세에 맞게 새로이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기준 매매 6억 원 이상 9억 원 미만 세대수는 서울 16.6%, 수도권 7.1%에 이르고 있으며, 전세 또한 3억 원 이상 6억 원 미만 세대수가 서울 25.4%, 수도권 10.6%에 해당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2인 이상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의 3억 원 미만 전세 아파트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더 이상 해당 구간의 주택 거주자들이 소위 ‘부자’들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서는 현재 협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한요율을 고정요율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경기도의회 조례 개정안의 경우 최고가 구간 외 모든 구간을 고정요율로 변경해 소비자들의 반발을 샀으며, 본회의 상정이 보류되었다.

상한요율을 고정요율로 변경할 경우, 소비자는 서비스의 특성, 종류, 질 등에 상관없이 정부 개정안을 기준으로 해당 구간의 최고요율이었던 상한요율을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보수로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정부 개편안의 상한요율 0.5%이면 0.5%범위 내에서 소비자와 공인중개사 간 협의를 통해 수수료가 더 낮아질 수 있으나, 협회의 주장대로 0.5% 고정요율이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든 해당 비율만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소비자와 공인중개사 간 협의를 배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인중개사의 서비스 경쟁도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서비스 경쟁이나 소비자와의 협의는 도외시되고 어떤 상황이든 정부 개편안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협회 측에서는 요율 협의에 따른 분쟁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분쟁을 없애자고 현재 조례안에서 가장 비싼 요율로 중개보수를 고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어불성설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고정요율이 가격경쟁을 배제하고 소비자이익을 제한하는 등 경쟁제한성이 있으므로 상한요율제보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오히려 소비자들은 주민들의 이익과 복지를 등한시하고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어야 할 조례 개정을 보류한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했다면 이는 본 회기가 시작되기 전 이미 논의를 가졌어야 했다. 하지만 조례 개정안의 원활한 처리를 촉구해온 소비자단체들과 달리 서울시의원들은 그간 단 한 차례도 소비자단체의 의견을 물어온 적이 없다. 이사철 소비자들의 수수료 부담을 완화시키지 못한 채 뚜렷한 이유 없이 본회의 상정을 보류한 것은 시민의 대표자로서 무책임한 행태라고 볼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가 주민의 복지와 이익을 대변하는 현명한 조례 개정안을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해주길 기대한다.

서비스 경쟁과 소비자 후생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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