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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允執厥中<윤집궐중>

중앙일보

입력

1931년 7월 1일 중국 창춘(長春)에 가까운 완바오산(萬寶山?만보산) 지역의 싼싱푸(三姓堡?삼성보)에서 농수로 건설을 둘러싸고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이 충돌했다. 출동한 일본 경찰이 중국 농민에게 발포했지만 사상자는 없었다. 일본의 사주를 받은 창춘의 한국 특파원이 완바오산에서 동포 200여 명이 중국 관민 800여 명에게 살상당했다는 속보를 타전한다.

2일 밤과 3일 새벽 “싼싱푸 동포 수난 갈수록 심해져/ 이백여 명 또 피습/ 중국 농민이 대거 폭행”을 제목으로 한 호외가 발행됐다. 자극적인 과장보도였다. 흥분한 한국인은 서울?평양?인천 등에서 중국인 배척 폭동을 일으켰다. 중국인 142명이 살해되고 546명이 부상하고 91명이 행방불명됐다.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했을 때 어떤 참사가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참담한 역사다. 상대를 이간(離間)하는 반간계(反間計)은 병법 36계의 33번째 책략이다. 완바오산 사건은 한국이 일본에 당한 경우였다. 오보한 특파원은 지린(吉林)성 군법처의 한국인 직원에게 ‘사죄서’를 쓴 뒤 사살당했다. 다행히 중국인 배척 폭동은 사그라들어 일본이 의도했던 만주침략의 구실이 되지는 못했다.

『논어(論語)』 요왈(堯曰)편에 “진실로 가운데를 잡으시게. 온 세상 백성들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작위도 영원히 끊어질 것”(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이란 구절이 나온다. 중국 고대의 성군 요(堯) 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며 한 당부다.

『서경(書經)』은 이를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오직 희미하니 오로지 정밀하고 한결같게 진실로 그 중정을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고 적었다. 주희(朱熹)는 『중용(中庸)』 서문에서 중정(中正)을 지키는 ‘윤집궐중’이 주자학의 바탕임을 밝혔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둘러싼 좌고우면(左顧右眄) 속에 언론 보도가 춤추고 있다. 윤집궐중이 답이요 중정은 국익이다. 문제는 합의된 국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국제부문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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