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검찰정치' 그 내연의 고리를 끊어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
사회2부장

‘정치검찰’. 정치권력을 위해 복무하는 검사들을 지적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새삼스러운 건 최근 새누리당 친이계 의원들이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데 사용하면서다. 하지만 ‘정치검찰’ 프레임으로는 현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정치검찰이 아니라 ‘검, 찰, 정, 치’이기 때문이다.

 그 첫째 이유는 누가(who)에 있다. 정부는 이완구 총리와 검찰을 사정의 주체로 내세운다. 이 총리가 지난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권력 구조를 볼 때 총리가 ‘취임 후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해오다’ 결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검찰의 순수한 의지로 이런 국가적 규모의 사정을 개시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총리가 메가폰을 잡고 검찰이 주연 배우로 나섰지만 제작자는 그들 너머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는 언제(when).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지난해 세월호 사건으로 대형 수사를 할 수 없었다. 지난해 10~11월부터 내사를 진행해 최근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세월호로 인해 지난해 말까지 국가의 사정 기능이 멈춰 있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부패 수사는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상시적으로 해야 검찰이 그토록 강조하는 ‘환부 도려내기’가 가능하다. 특히 상당수 사건은 이미 1~2년 전, 멀게는 지난 정부 때 내사를 벌였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때 수사하지 않은 것도, 지금 시점에 몰아서 하는 것도 정치적 고려로 읽힐 수밖에 없다. 올해가 ‘집권 3년차에 큰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라는 대목에 눈길이 모이는 까닭이다. 제대로 처벌만 하면 되지, 왜 시기를 문제 삼느냐고? 지체된 정의는 변질되기 마련이고, 변질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셋째, 어떻게(how). 검찰 안팎에서 “이렇게 거칠게 진행되는 사정은 처음”이란 말이 나온다. 사정은 국민과 기업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용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총리 담화에 이어 지난주 금요일 부정부패 척결 관계기관회의를 열어 ‘생중계 사정’ ‘PR 사정’의 신기원을 보여줬다. 요란한 사정은 엄포 놓기, 기강 잡기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을 준다. 수사방식 또한 끝없는 압수수색과 출국금지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 고위층에서 ‘기업 불법 비자금’ 언급이 나온 적은 없었다. 전개 방법도 토끼몰이식 진압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왜(why)다. 이번 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가장 큰 미스터리다. 시중에선 “경제 살리기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는 이 총리 설명보다 정보지의 관측에 더 무게를 싣는다. “박 대통령의 승부수가 성공한다면 ▶전 정권과의 차별화 ▶새누리당 비박 지도부 길들이기 ▶내년 총선 이슈 장악 등 ‘1석3조’ 효과를….” 포스코·자원외교 수사가 이명박 정부 실세그룹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만일 이번 사정이 정부·공기업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고 권력의 한풀이에만 그친다면 표적수사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더 분명한 건 검찰정치가 사회 전반에 끼칠 해악이다. 검찰을 앞세워야 하는 정치는 정상적인 정치가 마비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민주 정치에서 묻고 답하기(Q&A)는 정부-여당-야당-시민사회의 대등한 관계 속에 이뤄져야 한다. 일단 검찰정치가 시작되면 Q&A는 ‘신문→진술’의 일방향이 되고 만다. 조사실의 특수유리 뒤에서 지켜보는 자를 위한.

 이제는 “정치검찰 각성하라”고 촉구해서 해결될 단계를 지났다. 정치검찰을 배양하는 숙주는 검찰정치다. 그 내연(內緣)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열쇠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국민으로부터 나온 검찰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며 청와대·법무부 검사 파견 제한 등 검찰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런 그가 “검찰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말을 듣고 있는 건 검찰에게도, 대통령 자신에게도 슬픈 드라마다. 비극이다.

권석천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