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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못 떨진 세월호 의인 "쓸모도 없다" 손목 자해 시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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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지나가는 학생만 보면 세월호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모두들 잊으라고만 하니….”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목숨을 걸고 10여 명의 학생을 구해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렸던 김동수(50)씨는 20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에서 이렇게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산의 트라우마센터에 가는 길이라는 그의 왼쪽 손목엔 흰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전날 저녁 자해를 시도한 흔적이었다.

김씨는 지난 19일 오후 8시40분쯤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자택 화장실에서 흉기로 손목을 긋고 피를 흘리다 딸에게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김씨는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 치료를 받은 뒤 이날 밤 귀가했다.

그는 “칼을 보는 순간 '쓸모도 없는 손인데 잘라야지'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며 전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정신적·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당시 충격으로 머리가 끊임없이 아파 머리카락도 모두 잘랐다. 그는 “손과 발이 내 생각과 따로 노는데 병원에 가도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며 약만 줄 뿐”이라고 호소했다.

화물차 운전기사인 김씨는 “세월호 사고로 화물차를 잃은 뒤 모든 게 끊겼다”고 했다. 고3인 딸은 학원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나섰다. 김씨 부인도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매달 108만원의 정부 보조비를 받았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느라 오히려 카드 빚만 늘었다. 그나만 이 보조비도 올 들어 중단됐다.

지난 1월엔 보건복지부에 의사·상자 신청을 했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아직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상자는 자신의 직무가 아닌 상황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무릅쓰고 구조 행위를 하다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을 일컫는다. 의상자로 지정되면 보상금이 지급된다.

그는 “가장 괴로운 것은 주변 사람들 모두 ‘세월호 문제는 다 해결됐는데 왜 그때 일을 못 잊느냐’고 말하는 것”이라며 “지금도 창문만 보면 그때 아이들이 떠오르는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국회에도, 도청에도 가서 하소연을 했지만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세월호 1년이 다 돼 가는데 생존자는 여전히 뒷전이다. 살아남은 우리에겐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게 없다”며 씁쓸해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beno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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